"메이 총리의 마지막 패배"…英 하원, 합의안 부결(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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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가 58표 많아..보수당 일부 전향했지만 노동당, 북아일랜드 DUP '반대' 유지
영국 하원이 29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제시한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하는 조건이 담긴 ‘탈퇴 협정’ 합의안을 부결시켰다고 가디언지 등 영국 언론들이 일제히 전했다. 찬성이 286표, 반대 344표로 반대가 58표 많았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와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메이 총리는 앞서 합의안 통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합의안을 둘로 쪼갰다. 원래 합의안은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EU 탈퇴협정’ 쪽만 이번 표결에 부쳤다. 이는 영국 정부는 작년 말과 올해 초 서로 다른 내용의 합의안을 표결에 부쳤다가 두 번 다 부결되고 EU와 새로운 합의안을 만들지는 못한 상황에서 “동일한 내용의 법안에 대한 재투표를 실시할 수 없다”는 존 버커우 하원의장의 반대를 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메이 총리는 앞서 “합의안을 통과시켜 주면 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Back me then sack me)”는 승부수를 던졌다. 불신임 투표를 한 차례 거쳤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 보장되어 있는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을 테니 합의안만큼은 통과시켜달라는 취지였다.
막판에는 전 브렉시트 장관 도미닉 라브 등 보수당 내 강경파들도 일부 찬성쪽으로 돌아섰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야당인 노동당이 전향적으로 돌아서지 않았고 북아일랜드 의원들이 소속된 민주연합당(DUP) 소속 의원 10명도 반대의사를 유지하겠다고 결정했다.
◆의원들, 왜 반대했나
노동당은 메이 총리가 이번에 표결에 부친 합의안이 ‘반쪽짜리’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메이 총리의 ‘꼼수’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DUP 의원들은 합의안이 포함하고 있는 백스톱(안전장치)가 북아일랜드와 다른 지역을 차별함으로써 영국 전체의 완전성을 해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안전장치가 시행되면 브렉시트 이후 2020년 말까지 전환기에 영국 전체가 EU 관세동맹(customs union)에 잔류하되, 북아일랜드만 EU 단일시장(single market) 관할에 놓이게 된다. 북아일랜드만 EU 상품규제 등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며, 안전장치에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북아일랜드가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기류 탓에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부결을 예상하는 분위기가 번져나갔다.
메이 총리는 다음 주에 현 상황에 대한 ‘대안들’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영국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가 요구하고 있는 질서정연한(orderly) 브렉시트를 위해 지속적으로 (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메이 총리에게 사임하고 재총선을 치르자고 요구했다.
브렉시트 지지 강경파 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유럽연구그룹(ERG)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스티브 베이커 보수당 의원 역시 메이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부결은 테리사 메이 총리의 마지막 패배”라며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지금까지도 통과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 지도자가 나와서 교착 상태가 해소되어야만 의회에서 탈퇴 협정이 통과될 것이라는 논리다. 베이커 의원은 “국가적으로 비극적인 시간이었으며 에너지 낭비였다. 우리는 더 이상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U 반응은
EU는 즉각 유감이라는 뜻을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4월10일 임시 EU 정상회의를 열어 브렉시트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EU는 4월12일 자정에 노딜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시나리오에 대비되어 있다고 전했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는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것이 EU가 선호하는 선택은 아니라고 했다.
◆향후 일정은
앞서 EU 정상들은 지난 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통과시킬 경우 5월22일까지 브렉시트를 미룰 수 있다고 결정했다.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는 4월12일에 노딜 브렉시트를 해야 한다.
4월12일까지는 아직 2주 가량 시간이 있다. 이 사이에라도 어떻게든 합의안이 통과된다면 5월에 ‘소프트 브렉시트’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FT는 영국 정부가 다음 월요일인 4월1일 합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월12일 이후까지 합의안 통과를 시도하기 위해 영국이 EU에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오는 5월23~26일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에 영국이 참여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EU가 추가 연기에 동의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파운드화 가치 하락
하원이 합의안을 또다시 부결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0.35% 떨어져 파운드당 1.3달러 아래로 밀렸다. 파운드당 1.3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2주 만에 처음이다. 유로화에 대해서는 0.33% 떨어져 파운드당 1.1573유로 선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증시는 거의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미 예정된 결론이 다시 확인된 데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이미 상당부분 반영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하원 부결 소식이 전해진 후 약 1시간 동안 영국 대기업들이 포함된 FTSE100지수는 0.6% 올랐고 중소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는 FTSE250지수는 0.9% 상승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메이 총리는 앞서 합의안 통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합의안을 둘로 쪼갰다. 원래 합의안은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EU 탈퇴협정’ 쪽만 이번 표결에 부쳤다. 이는 영국 정부는 작년 말과 올해 초 서로 다른 내용의 합의안을 표결에 부쳤다가 두 번 다 부결되고 EU와 새로운 합의안을 만들지는 못한 상황에서 “동일한 내용의 법안에 대한 재투표를 실시할 수 없다”는 존 버커우 하원의장의 반대를 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메이 총리는 앞서 “합의안을 통과시켜 주면 총리 직에서 물러나겠다(Back me then sack me)”는 승부수를 던졌다. 불신임 투표를 한 차례 거쳤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 보장되어 있는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을 테니 합의안만큼은 통과시켜달라는 취지였다.
막판에는 전 브렉시트 장관 도미닉 라브 등 보수당 내 강경파들도 일부 찬성쪽으로 돌아섰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야당인 노동당이 전향적으로 돌아서지 않았고 북아일랜드 의원들이 소속된 민주연합당(DUP) 소속 의원 10명도 반대의사를 유지하겠다고 결정했다.
◆의원들, 왜 반대했나
노동당은 메이 총리가 이번에 표결에 부친 합의안이 ‘반쪽짜리’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메이 총리의 ‘꼼수’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DUP 의원들은 합의안이 포함하고 있는 백스톱(안전장치)가 북아일랜드와 다른 지역을 차별함으로써 영국 전체의 완전성을 해친다고 비판하고 있다. 안전장치가 시행되면 브렉시트 이후 2020년 말까지 전환기에 영국 전체가 EU 관세동맹(customs union)에 잔류하되, 북아일랜드만 EU 단일시장(single market) 관할에 놓이게 된다. 북아일랜드만 EU 상품규제 등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며, 안전장치에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북아일랜드가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기류 탓에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부결을 예상하는 분위기가 번져나갔다.
메이 총리는 다음 주에 현 상황에 대한 ‘대안들’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영국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가 요구하고 있는 질서정연한(orderly) 브렉시트를 위해 지속적으로 (의원들에게)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메이 총리에게 사임하고 재총선을 치르자고 요구했다.
브렉시트 지지 강경파 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유럽연구그룹(ERG)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스티브 베이커 보수당 의원 역시 메이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부결은 테리사 메이 총리의 마지막 패배”라며 “(메이 총리의 합의안은) 지금까지도 통과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 지도자가 나와서 교착 상태가 해소되어야만 의회에서 탈퇴 협정이 통과될 것이라는 논리다. 베이커 의원은 “국가적으로 비극적인 시간이었으며 에너지 낭비였다. 우리는 더 이상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U 반응은
EU는 즉각 유감이라는 뜻을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4월10일 임시 EU 정상회의를 열어 브렉시트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EU는 4월12일 자정에 노딜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시나리오에 대비되어 있다고 전했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는 영국이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것이 EU가 선호하는 선택은 아니라고 했다.
◆향후 일정은
앞서 EU 정상들은 지난 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통과시킬 경우 5월22일까지 브렉시트를 미룰 수 있다고 결정했다.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는 4월12일에 노딜 브렉시트를 해야 한다.
4월12일까지는 아직 2주 가량 시간이 있다. 이 사이에라도 어떻게든 합의안이 통과된다면 5월에 ‘소프트 브렉시트’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FT는 영국 정부가 다음 월요일인 4월1일 합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4월12일 이후까지 합의안 통과를 시도하기 위해 영국이 EU에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오는 5월23~26일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에 영국이 참여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EU가 추가 연기에 동의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파운드화 가치 하락
하원이 합의안을 또다시 부결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0.35% 떨어져 파운드당 1.3달러 아래로 밀렸다. 파운드당 1.3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2주 만에 처음이다. 유로화에 대해서는 0.33% 떨어져 파운드당 1.1573유로 선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증시는 거의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미 예정된 결론이 다시 확인된 데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이미 상당부분 반영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하원 부결 소식이 전해진 후 약 1시간 동안 영국 대기업들이 포함된 FTSE100지수는 0.6% 올랐고 중소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는 FTSE250지수는 0.9% 상승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