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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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연합(EU) 간 결별 조건을 담은 EU 탈퇴협정이 영국 하원의 벽을 넘는 데 또 실패했다. 이로써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은 한 층 더 커졌다.

영국 하원은 29일(현지시간) '탈퇴협정을 승인해 5월 22일 EU를 떠난다'는 정부 결의안을 놓고 표결을 진행한 결과 찬성 286표, 반대 344표로 58표차 부결됐다.

집권 보수당 277명을 포함해 노동당 5명, 무소속 4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동당(234표), 스코틀랜드국민당(SNP·34표), 무소속(16명), 자유민주당(11표), 민주연합당(DUP·10표), 웨일스민족당(4표), 녹색당(1표)과 함께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 34명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표차가 58표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수당 반란표와 사실상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왔던 DUP가 메이 총리를 지지했다면 탈퇴협정이 통과됐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번 부결로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영국과 EU가 지난해 11월 합의한 585쪽 분량의 EU 탈퇴협정은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안전장치'(backstop) 등 이른바 '이혼조건'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EU 탈퇴협정과 함께 브렉시트 합의안의 또다른 축인 '미래관계 정치선언'은 26쪽 분량으로,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 미래관계 협상의 골자를 담았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월 중순과 이달 12일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포함하는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 부쳤지만 1차는 영국 의정 사상 정부 패배로는 사상 최대인 230표 차로, 2차는 149표 차로 부결됐다.

합의안이 승인투표 벽을 넘지 못하고 예정됐던 브렉시트 시기가 다가오자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3개월 연기를 EU 측에 요청했다.

지난주 열린 정상회의에서 EU는 영국 하원이 이번 주까지 EU 탈퇴협정을 가결할 경우 브렉시트 시기를 5월 22일까지 연기하도록 승인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영국이 4월 12일까지 '노 딜' 또는 5월 유럽의회 선거 참여를 통한 브렉시트 '장기 연기'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메이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 제3 승인투표를 열 것으로 전망됐지만,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같은 회기 내 동일한 사안을 표결에 부칠 수 없다는 의회규약을 근거로 이를 가로막자 EU 탈퇴협정만 따로 떼 별도 표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표결에 앞선 토론에서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은 "이번이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EU 탈퇴시점을 5월 22일까지 연기하는 '법적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승인을 촉구했다.

그러나 두 번의 승인투표에 이어 이날 EU 탈퇴협정에 관한 결의안마저 의회의 벽에 가로막히면서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하원은 오는 4월1일 추가 '의향투표'(indicative vote)를 열고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의향투표란 하원의 과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브렉시트 방안을 찾을 때까지 제안된 여러 옵션에 대해 투표하는 것이다.

앞서 지난 27일 처음으로 열린 '의향투표'에서 브렉시트 관련 8개 대안은 모두 과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다만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남도록 하는 내용의 옵션 J가 찬성 264표, 반대 272표로 8표차 부결했고, 어떤 브렉시트 안도 반드시 제2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옵션 M은 가장 많은 268표의 찬성표(반대 295표)를 얻어 추가 의향투표 결과에 따라서 과반 확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추가 의향투표에서도 하원이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하면 영국은 4월12일 이전에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또는 5월 유럽의회 선거 참여를 통한 브렉시트 '장기 연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