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의 선전狂시대] 세계 최대 섹스시티의 소멸과 공산당의 중국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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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종사자만 25만명 넘던 선전과 둥관 성매매
시진핑 집권 이후 강력 단속으로 사라져
공산당의 권위와 능력 인정 받으려는 의도도
시진핑 집권 이후 강력 단속으로 사라져
공산당의 권위와 능력 인정 받으려는 의도도
한때 광둥성 일대는 중국 내에서 가장 성매매가 성행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2013년 이전에 사업차 선전이나 광저우, 둥관 등을 방문했던 이들의 ‘무용담’을 기자도 선전에 오기 전에 심심치 않게 들었다.
하지만 지금 선전과 광저우 등에서는 성매매 자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시진핑 집권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중국인들에게 이는 공산당 통치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개혁개방과 함께 발아한 성도(性都)
광둥성이 성매매의 온상이 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78년 선전이 경제특구로 지정되며 중국 내에서 가장 먼저 외국과 교역을 시작하며 접대 등을 위해 유흥업이 성행하게 됐다. 일자리를 구해 전국 각지에서 밀려든 인력들 중 일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서기도 했다. 개혁개방 초기 자본형성을 위해 밀수 등 탈법을 눈감아 주던 지방 당국은 이를 못본채 했다. 이렇게 성장한 성매매는 경제에 큰 축을 차지했다. 선전에서 홍콩과 가까운 뤄후와 푸텐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 남성들의 얼나이(二奶·정부 혹은 첩)가 모여사는 지역이 따로 존재했다. 2002년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선전을 방문했을 때는 선전 일대의 금융망이 마비되기도 했다. 장쩌민의 방문에 맞춰 성매매 업소의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면서 종사자들이 앞다퉈 생활비를 인출한 결과다.
경제발전이 지속되며 선전에 있던 제조공장들이 인근 둥관으로 이전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는 둥관이 중국 내 성매매 대표 도시가 됐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2008년을 전후해서는 도산한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성매매 산업에 진입하며 관련 규모가 더 커졌다.
한때 둥관에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25만명에 이르렀다. 관련 매출은 500억위안으로 둥관 지역내총생산(GRDP)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둥관은 세계 최대의 성도(性都·섹스시티)로 불렸다. 광둥성 다른 도시에도 성매매가 번창해 2003년에는 일본의 한 건설업체 직원들이 주하이에서 단체로 성매매 여성 200여명을 불러 원정 성매매를 하다 발각되기도 했다.
◆빨랐던 몰락
번성하던 성매매 산업은 시진핑이 국가 주석에 오른 1년 뒤부터 빠르게 사라져갔다. 2014년 2월 둥관의 성매매 실태를 보도한 CCTV 특별 프로그램이 신호탄이었다. 광둥성 지방정부와 경찰은 광둥성 일대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4개월동안에만 성매매 업소 3553곳을 영업정지 시키고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알선한 3033명을 구속했다.
성매매를 방조하거나 관련자들과 유착한 공무원들도 줄줄이 처벌 당했다. 둥관 부시장 겸 경찰국장, 둥관진 당위원회 서기, 파출소장 등 경찰관 등을 줄줄이 면직하고 조사했다. 한국의 국회의원과 비슷한 둥관 전국인민대회대표도 한해 1만건의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2011년까지 7년간 둥관시 공산당 서기로 재직했던 광둥성 부성장이 성매매를 방조한 혐의로 2016년 낙마하며 관련 처벌은 일단락됐다. 대대적인 단속은 둥관을 중심으로 일대 경제에도 타격을 줬다. 호텔과 식당의 영업이 부진에 빠지고 부동산 가격까지 떨어졌다. 2005년 설립 당시 2000개 상점이 입주해 세계 최대 쇼핑몰로 불렸던 신화난쇼핑센터는 공실률이 50%를 넘었고, 유흥가 밀집지역의 아파트 임대료도 20% 하락했다.
20만명이 넘는 성매매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되며 후폭풍이 불기도 했다. 귀향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은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 여성이 광저우와 선전 일대 중산층 남성들의 정부가 되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지역 부인들은 모이면 어떻게 남편 단속할지를 의논했다는 후문이다.
◆지배 정당성 증명하려는 공산당
성매매 단속 초기에는 중국 내에서도 회의론이 높았다. 성매매가 음성화될 뿐 사라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2012년 3개월간 베이징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부도심이긴 했지만 대로변에 발마사지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영업하는 성매매 업소를 보면서 완전히 사라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성매매 산업 추방은 성공했다. 선전의 한 한국기업 주재원은 “어쩌다 노래방 도우미와 소위 ‘2차’를 가는 경우는 있어도 성매매 업소를 찾기는 불가능하다”며 “한국에서 온 고객이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고 전했다. 한 중국 기업인도 “정말 중요한 외국 고객이 방문해 접대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며 “성매매를 알선하면 나 자신과 고객 모두 큰 위험부담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전과 광둥성 일대에서 중국 공안은 끈질기게 변칙 성매매를 단속하고 있다. 최근에도 오토바이에 성매매 여성을 태워 주점에 보내는 행위와 호텔에 전단지를 뿌리며 성매매를 알선하는 행위 등이 적발됐다. 당국은 적발된 성매수자와 성매매 여성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엄벌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성매매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가의 뿌리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엄연히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던만큼 관료들의 부패와 함께 공산당 통치에 누수가 생기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기자가 베이징에서 자주 만나던 중국인들은 만연하던 성매매에 대해 “공산당이 결심만 하면 무조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중국 정부의 성매매 단속은 자신들이 거대한 중국과 15억의 인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기회가 됐다.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을 재정립하려던 시진핑이었기에 더욱 중요한 과제였다.
물론 얼나이 등을 비롯한 축첩 관행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자산가 등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성매매는 여전하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길거리와 호텔, 이발소, 안마방을 가리지 않고 성매매가 벌어지던 과거와 이같은 풍경이 완전히 사라진 현재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조직폭력배를 소탕한 홍콩, 남한의 3분의 1면적임에도 삼합회를 완전히 척결하지 못한 대만 등과 대비된다. 권위주의 정부의 인권 유린과 정보 통제에도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하지만 지금 선전과 광저우 등에서는 성매매 자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시진핑 집권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중국인들에게 이는 공산당 통치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개혁개방과 함께 발아한 성도(性都)
광둥성이 성매매의 온상이 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78년 선전이 경제특구로 지정되며 중국 내에서 가장 먼저 외국과 교역을 시작하며 접대 등을 위해 유흥업이 성행하게 됐다. 일자리를 구해 전국 각지에서 밀려든 인력들 중 일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서기도 했다. 개혁개방 초기 자본형성을 위해 밀수 등 탈법을 눈감아 주던 지방 당국은 이를 못본채 했다. 이렇게 성장한 성매매는 경제에 큰 축을 차지했다. 선전에서 홍콩과 가까운 뤄후와 푸텐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 남성들의 얼나이(二奶·정부 혹은 첩)가 모여사는 지역이 따로 존재했다. 2002년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선전을 방문했을 때는 선전 일대의 금융망이 마비되기도 했다. 장쩌민의 방문에 맞춰 성매매 업소의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면서 종사자들이 앞다퉈 생활비를 인출한 결과다.
경제발전이 지속되며 선전에 있던 제조공장들이 인근 둥관으로 이전하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는 둥관이 중국 내 성매매 대표 도시가 됐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2008년을 전후해서는 도산한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성매매 산업에 진입하며 관련 규모가 더 커졌다.
한때 둥관에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25만명에 이르렀다. 관련 매출은 500억위안으로 둥관 지역내총생산(GRDP)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둥관은 세계 최대의 성도(性都·섹스시티)로 불렸다. 광둥성 다른 도시에도 성매매가 번창해 2003년에는 일본의 한 건설업체 직원들이 주하이에서 단체로 성매매 여성 200여명을 불러 원정 성매매를 하다 발각되기도 했다.
◆빨랐던 몰락
번성하던 성매매 산업은 시진핑이 국가 주석에 오른 1년 뒤부터 빠르게 사라져갔다. 2014년 2월 둥관의 성매매 실태를 보도한 CCTV 특별 프로그램이 신호탄이었다. 광둥성 지방정부와 경찰은 광둥성 일대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4개월동안에만 성매매 업소 3553곳을 영업정지 시키고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알선한 3033명을 구속했다.
성매매를 방조하거나 관련자들과 유착한 공무원들도 줄줄이 처벌 당했다. 둥관 부시장 겸 경찰국장, 둥관진 당위원회 서기, 파출소장 등 경찰관 등을 줄줄이 면직하고 조사했다. 한국의 국회의원과 비슷한 둥관 전국인민대회대표도 한해 1만건의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2011년까지 7년간 둥관시 공산당 서기로 재직했던 광둥성 부성장이 성매매를 방조한 혐의로 2016년 낙마하며 관련 처벌은 일단락됐다. 대대적인 단속은 둥관을 중심으로 일대 경제에도 타격을 줬다. 호텔과 식당의 영업이 부진에 빠지고 부동산 가격까지 떨어졌다. 2005년 설립 당시 2000개 상점이 입주해 세계 최대 쇼핑몰로 불렸던 신화난쇼핑센터는 공실률이 50%를 넘었고, 유흥가 밀집지역의 아파트 임대료도 20% 하락했다.
20만명이 넘는 성매매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되며 후폭풍이 불기도 했다. 귀향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은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 여성이 광저우와 선전 일대 중산층 남성들의 정부가 되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지역 부인들은 모이면 어떻게 남편 단속할지를 의논했다는 후문이다.
◆지배 정당성 증명하려는 공산당
성매매 단속 초기에는 중국 내에서도 회의론이 높았다. 성매매가 음성화될 뿐 사라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2012년 3개월간 베이징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부도심이긴 했지만 대로변에 발마사지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영업하는 성매매 업소를 보면서 완전히 사라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성매매 산업 추방은 성공했다. 선전의 한 한국기업 주재원은 “어쩌다 노래방 도우미와 소위 ‘2차’를 가는 경우는 있어도 성매매 업소를 찾기는 불가능하다”며 “한국에서 온 고객이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고 전했다. 한 중국 기업인도 “정말 중요한 외국 고객이 방문해 접대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며 “성매매를 알선하면 나 자신과 고객 모두 큰 위험부담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전과 광둥성 일대에서 중국 공안은 끈질기게 변칙 성매매를 단속하고 있다. 최근에도 오토바이에 성매매 여성을 태워 주점에 보내는 행위와 호텔에 전단지를 뿌리며 성매매를 알선하는 행위 등이 적발됐다. 당국은 적발된 성매수자와 성매매 여성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엄벌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성매매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가의 뿌리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엄연히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였던만큼 관료들의 부패와 함께 공산당 통치에 누수가 생기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기자가 베이징에서 자주 만나던 중국인들은 만연하던 성매매에 대해 “공산당이 결심만 하면 무조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중국 정부의 성매매 단속은 자신들이 거대한 중국과 15억의 인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기회가 됐다.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을 재정립하려던 시진핑이었기에 더욱 중요한 과제였다.
물론 얼나이 등을 비롯한 축첩 관행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자산가 등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성매매는 여전하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길거리와 호텔, 이발소, 안마방을 가리지 않고 성매매가 벌어지던 과거와 이같은 풍경이 완전히 사라진 현재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조직폭력배를 소탕한 홍콩, 남한의 3분의 1면적임에도 삼합회를 완전히 척결하지 못한 대만 등과 대비된다. 권위주의 정부의 인권 유린과 정보 통제에도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