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7) 스페인 그라나다
노을빛 질 무렵…알함브라는 더 붉게 타오른다
그 남자, 알함브라 궁전의 낭만에 빠지다
문양의 정교함과 사람의 공이 들어간 알함브라
알함브라 궁전에서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다. ‘붉은 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벽이 약간 붉다(스페인식으로 읽으면 알람브라, 영어식으로 읽으면 알함브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 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남부 도시인 그라나다는 한때 유럽에 진출했던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고, 알함브라 궁전은 그들의 성채였다. 13세기, 나스르 왕조 21대 왕에 의해 지어진 알함브라 궁전은 15세기 말, 가톨릭과 이슬람 전쟁에서 승리한 이사벨 1세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기까지 이슬람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궁전이었다.
이 아름다운 궁전이 큰 훼손 하나 없이 후세에 전해진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다. 이사벨 1세는 이슬람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 탈환하는 도시마다 파괴를 명령했다. 하지만 그라나다를 점령한 뒤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결국 명령을 거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나 병영 등으로 쓰이며, 아름다움이 다소 퇴색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말했듯이 시간의 손길이 가장 가볍게 스치듯이 지나간 것처럼 태초의 모습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나르스 궁전에 들어서자 성 안을 가득 메운 정교한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난다. 왕이 직접 생활했던 공간이자 집무실이니 그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하겠는가? 벽을 구성하는 타일 하나하나, 조각 하나하나에 새겨진 문양의 정교함은 이 궁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입됐고, 또 얼마나 오랜 시간과 공이 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한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고드름처럼 매달린 수많은 장식과 조각들에 의해 공간감마저 무너진다. 마치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모형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곳에서 생활하며 집무를 봤을 왕의 하루가 부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불쌍한 이는 이 아름다운 궁전을 볼 수 없는 맹인 거지라는 이야기가 허풍에서 나온 소리는 아닌 듯하다.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매력적인 음악
현란한 아름다움에 매료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별궁과도 같은 ‘헤네랄리페’에 다다랐다. 나르스 궁전이 화려한 옷을 입고 강렬한 색채로 한껏 멋을 낸 도시미인이라면 헤네랄리페는 수수한 옷차림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자연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집무에 지친 왕을 위한 장소인 듯 산책을 할 수 있는 멋진 정원이다.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기는 녹색 나무가 정갈하게 손질돼 있고, 그 나무들에 의해 둘러싸인 아름다운 분수에서 잔잔한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고요한 물소리다. 그러고 보니 이 물소리가 트레몰로 주법을 닮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명곡을 탄생시킨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사랑 고백에 실패한 뒤 이곳 알함브라 궁전을 여행하게 됐다고 한다. 밤하늘의 고요함이 내려앉은 정원에 앉아 사랑하는 그녀를 떠올렸을 것이다. 달 그림자가 비치는 작은 분수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실연의 아픔을 담은 전설의 명곡을 썼을 것이다. 노을이 지는 시간이다. 알바이신 지구에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알함브라 궁전의 내부를 봤으니 이제 전경을 보고 싶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알함브라 궁전은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붉은 흙 냄새에 익숙해질 때쯤 해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며 세상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가득 메운 붉은 노을빛이 알함브라 궁전을 감싸 안자 궁전은 조금 더 붉게 타오른다. 아… 그래서 알함브라 궁전이라고 이름 지어졌구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렇게 잊지 못할 강렬한 붉은 색으로 기억될 것 같다. 심금을 울리는 기타 선율과 함께 말이다. 그 여자, 집시의 춤과 노래에 매혹되다
플라멩코, 스페인의 인류 무형 문화 유산
슬플 땐 슬프다고, 기쁠 땐 기쁘다고, 또 힘들 땐 힘들다고 표현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된 건 어릴 적 학교에서 울면서 돌아온 내게 “사람 많은 데서 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타이른 부모님 탓일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에서 네 마음을 곧이곧대로 들키는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야”라고 조언한 선배 탓일까? 어느샌가 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아닌 척, 괜찮은 척 숨기는 데에 더 익숙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몸에 밴 오랜 타성은 여행 중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그라나다에 도착했을 때였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 틈에 끼어 나 역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감탄하는 척했지만, 실은 700여 년의 세월도 거뜬히 녹여낼 듯한 7월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아다니느라 바빴을 뿐이었다. 이 유명한 궁전 앞에선 누구라도 감동받아야 하는 게 마땅했기에 난 덥고 힘들기만 할 뿐 어떠한 감동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차마 내뱉지 못했다.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고, 감정이 메말라 보이지 않으려고 그저 감동받은 ‘척’하며 투어를 마치고 나니 알함브라 궁전은 이미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대신 그라나다의 밤, 그 밤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고작 소극장 공연 하나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방식을 완전히 깨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작열하던 한낮의 붉은 해가 저문 후 우리는 사크로몬테 언덕 허리에 자리한 자그마한 동굴 집으로 향했다. 입장 그리고 착석. 나란히 앉은 양옆 사람과 엉덩이와 엉덩이가 수줍게 닿았고, 앞으로 손을 뻗으면 맞은편 사람과 맞장구라도 칠 수 있을 듯 좁은 공간이었다. 이곳이 바로 수백 년간 떠돌이로 살며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 했던 서글픈 집시들의 정착지이자 오늘 밤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질 무대라 했다. 사실 우리가 가진 가이드북에는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내용만 잔뜩 실려 있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지식도, 기대도 전무한 상태였다.
플라멩코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 유산에 등재된 스페인 고유의 예술 공연이다. 화려함과 뜨거운 열정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독특함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속한 이곳 그라나다는 플라멩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플라멩코의 양식과 음악적 형태 중 많은 부분이 안달루시아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플라멩코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불꽃을 뜻하는 ‘플라마(flama)’에서 비롯된 은어로 ‘멋진’, ‘화려한’을 뜻했던 것이 집시 음악에 쓰이게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삶의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집시들
한동안 웅성거리던 관객들의 잡소리가 잦아들자 바일레(춤), 토케(기타 연주), 칸테(노래)로 구성된 집시들의 동굴 플라멩코 공연이 시작됐다. 춤이란 건 흥에 겨워 기분 좋게 추는 행위로만 알았는데 무대 위 좀처럼 웃지 않는 무용수가 난 무척이나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거기다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기타 연주에 맞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우울한 노래, 나는 그게 노래라기보다 처절한 발악에 가깝다 생각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공연이 아니었기에 ‘그라나다는 나와는 맞지 않는 도시구나!’ 생각하며 그저 리듬에 맞춰 흥겨운 척 박수나 짝짝짝 치다 돌아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기한 감정이 일었다. 뭉클 슬펐다가, 한없이 애달팠다가, 가끔은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짧은 순간 벅찬 희열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억누르고 숨겨왔기에 이토록 심오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도, 심연의 표정을 읽을 수도 없었기에 머리로 해석하고 이해한 건 아니었다. 그건 공연자의 뒷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과 까만 눈동자 깊숙이까지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동굴 공연장이기에 가능한 ‘공감’이었다.
공연자와 함께 춤추고 호흡하며 영혼까지도 빨려 들어갈 듯 뇌쇄 당한 공연이 막바지로 치닫자 더 이상 내 눈과 내 호흡으로는 쫓아갈 수도 없게 빨라지는 격정적인 파소(스텝), 그리고 일순간의 데즈프랑데(격렬하게 춤을 추다가 잠깐 멈춤). 숨 가쁜 정적 속에서 누가 볼까 속으로만 삼켰던 나의 오랜 울음이 탁 터져나왔다.
공연을 보면서 울컥해 떨군 한 방울의 눈물은 이내 그칠 수 있었지만, 그날의 눈물이 도화선이 됐는지 여행하는 내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에도 그렁그렁 삐져나오는 감정의 눈물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는 내내 좋아도 슬퍼도 표현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묵혀뒀던 솔직한 내 마음의 표현이니, 오늘만큼은 괜찮다 생각했다. 바보 같아 보여도 프로답지 않아도 사람은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 그 남자(오재철), 그 여자(정민아) : 결혼과 동시에 414일간 신혼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의 그 남자와 웹기획자 출신의 그 여자는 부부이기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한 지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두 가지 여행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공동 저서로《함께, 다시, 유럽》,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등이 있다.
그라나다=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 정보
그라나다 가는 법 : 한국에서 스페인의 그라나다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바르셀로나까지 직항으로 12~13시간가량 걸리며,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까지 국내선으로 1시간30분가량 걸린다. 기차로 이동할 경우 7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 입장 팁 : 알함브라 궁전은 미리 예약하는 시스템으로 돼 있다. 오전 8시30분부터 입장 가능하며 10월 15일부터 3월 31일까지는 오후 6시까지, 4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는 오후 8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야간권을 구매한 경우 입·퇴장 시간이 다르다). 방문할 궁전과 시간대에 따라 몇 가지 옵션을 고를 수 있는데, 나즈리 궁전은 입장 시간을 정확하게 선택한 뒤 예약해야 한다.
날씨 : 1년 내내 평균 20도를 웃도는 온화한 날씨지만 한여름에는 35도를 넘기도 한다.
시차 : 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