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바이오제약 투자 결딴낼 회계규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약개발 몰아치기는 전광석화였다. “혁신 장려를 위한 심사기준 개선”을 주창한 의사 출신 스콧 코틀립 박사가 식품의약국(FDA) 국장에 임명되면서 신약개발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안전성이 필수지만 말기 환자에게는 신속성 역시 생명줄이다. 저렴하고 안전한 신약개발은 의료비를 줄이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일거양득이다.

작년 1월 23일자 다산칼럼에서 필자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맨손 창업 스토리를 소개했다. 초기자본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2001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G로부터 지분율 12%에 상당하는 출자를 받아냈다. 지배주주 없이 정치권력 지형에 따라 흔들리는 KT&G로서는 장기투자를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다. 2010년 지분 전량을 2800억원에 처분했는데 현재 시가총액이 23조원임을 감안하면 ‘10년도 안 돼 10배’로 불어날 대박을 놓친 셈이다. 매각대금 일부가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트리삭티 지분에 투입됐는데 그 손실과 관련된 구설이 아직도 떠돈다.

세계 각국이 분초(分秒)를 다투며 신약개발에 매진하는데 우리는 생뚱맞은 회계논쟁으로 탈진 상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합작투자가 지분법 대상인지 연결대상인지를 놓고 작년 5월부터 금융감독 당국과 행정법원이 바쁘다. 최고 수준 난도의 고급회계와 관련해 감독당국이 고강도 제재와 검찰 고발을 강행했지만 행정법원은 회사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감독당국이 법원 가처분에 불복한 가운데 행정소송 절차가 진행 중이고 검찰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다산 칼럼] 바이오제약 투자 결딴낼 회계규제
작년 8월에는 제약업 전반의 회계규제를 강화하는 ‘제약·바이오 기업 사업 보고서 기재 모범사례’가 공표됐다. ‘기업의 합리적 판단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는 문구를 살짝 끼워 넣었지만 ‘제시된 사항 외에 추가로 기재할 사항이 있는지 검토할 것’도 요구하는 포괄적 규제다. 바이오제약의 연구개발과 시장 개척은 간발의 차이가 생사를 가르는데 핵심 개발인력 정보까지 낱낱이 공개하면 첨예한 국제 경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이다.

바이오제약업은 연구개발 투자 소요가 엄청나지만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고 상업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기업가적 결단으로 위험을 수용해야 한다. 작년 2분기까지 증가하던 투자는 회계규제가 본격화된 3분기부터 급격히 줄었다. 현금흐름표에서는 기업 현금흐름을 영업, 투자·재무활동으로 구분하고 마이너스(-)는 지출이 많음을, 플러스(+)는 수입이 많음을 표시한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난해 2분기 순투자 지출은 각각 1361억원과 4614억원이었다. 그러나 3분기에는 291억원과 173억원으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셀트리온의 경우 4분기에는 신규 투자가 투자 회수보다 7억원 적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투자와 고용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회계혼란으로 일자리도 줄었을 것이다.

셀트리온 주주총회에서 서 회장은 2021년까지 연간 매출 5조원, 2030년까지 3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강력한 투자 드라이브가 뒷받침돼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정부는 연구개발 및 회계와 관련된 규제를 혁신하고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학계와 전문단체에서도 적극 나서야 한다. 딜로이트안진은 4월 9일 ‘제약산업의 해외진출 및 투자’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효과적 전략을 강구한다.

바이오제약은 기술 집약도와 부가가치가 특히 높은 대표적 신성장산업이다. 최고의 인재가 집결된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도 미래 먹거리를 위한 바이오제약 혁신성장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