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페로탱갤러리 부스에 전시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황금 조각 `무제`.
프랑스 페로탱갤러리 부스에 전시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황금 조각 `무제`.
31일 막을 내린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아트바젤 홍콩’이 열린 홍콩 컨벤션센터는 미술 애호가의 열기로 뜨거웠다. 첫날인 지난 29일 오후 4시께 입장권이 매진돼 암표상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1조원 규모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이 행사에는 27일부터 31일까지 5일 동안 약 4만 명이 찾았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찾기는 했지만 초고가 대작이 즐비했던 작년에 비하면 특별히 주목받은 대작이나 특정한 경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렘 드 쿠닝 작품 ‘무제’가 이번 전시를 통해 1000만달러(약 114억원)에 팔렸다. 지난해 그의 그림 한 점은 개장 2시간 만에 3500만달러(약 370억원)에 팔려 주목받았다. 앞다퉈 대작을 선보여온 갤러리 간 경쟁이 약해지면서 전체적으로 거품이 빠진 느낌이었다.

이번 전시엔 세계 36개국 242개 갤러리가 부스를 차렸다. 한국 갤러리는 10곳이 참가했다. 리손, 가고시안, 페이스, 리만머핀, 페로탱, 화이트큐브, 스카스테트, 하우저앤드워스, 데이비드즈워너 등 세계적 화랑들이 차지한 중앙 부스에는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가 특히 북적였다.

올해 최고가로 나온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플라워’와 개막 1시간 만에 175만달러(약 20억원)에 팔린 독일 표현주의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Wir sind es(그게 우리야)’를 비롯해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와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 쩡판즈,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등으로 관객들을 모았다. 국내 작가 중에선 이우환의 단색화 작품들을 페이스, 리슨, 카멜메누르 등이 소개했다. 리만머핀이 집중 전시한 서도호 작가의 폴리에스테르 조형작들도 관객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여성 작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주최 측은 행사장 1층 입구에 한국 여성 작가 ‘이불’이 제작한 애드벌룬 모양의 거대 은빛 비행선 설치작 ‘Willing To Be Vulnerable(취약할 의향)’을 선보였다. 리만머핀 갤러리와 국내 갤러리인 PKM도 이 작가의 작품들을 집중 전시했다. 미국 데이비드즈워너 갤러리는 미국 여성 조각가 캐럴 보브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 아라리오 갤러리도 인도 여성 페미니즘 작가 나리니 말라니 작품 두 점을 메인작으로 선보였다.

국내 갤러리들도 각자 색깔을 담아낸 전시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트페어 이사회 멤버인 국제갤러리는 단색화 대가인 이우환과 박서보부터 영국 작가 줄리언 오피, 유영국 하종현 등을 조명했다. 민중미술을 지향하는 학고재갤러리는 외국 작가 없이 윤석남의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비롯해 신학철 강요배 등 한국 작가들을 해외 관객에게 소개했다.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서양 갤러리들이 과시하듯 유명 작품을 갖고 오다 아시아권 작품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거품이 빠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홍콩=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