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약속에도…복지부 바이오헬스 규제 개선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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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선진입 후평가' 적용
문 대통령 "식약처 허가만 받으면 출시"
작년 체외진단기 규제완화 언급
복지부서 약속 뒤집고 절차 늘려
문 대통령 "식약처 허가만 받으면 출시"
작년 체외진단기 규제완화 언급
복지부서 약속 뒤집고 절차 늘려
“혈액이나 소변으로 질병과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체외진단기기는 시장 진입에 1년 이상 소요되던 것이 80일 이내로 줄어들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찾아 발표한 의료기기 규제 혁신방안의 핵심 내용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사람 몸에 직접 사용하지 않고 의사 진료 편의를 위한 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만 받으면 되도록 절차를 대폭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8개월이 지났다. 보건복지부는 세부안을 내놨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약속보다 심사기간이 60일 더 길어졌다. 없애기로 했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복지부 평가 절차도 기간만 짧아졌을 뿐 그대로 남았다. 파격적인 규제 혁신을 고대했던 업계에서는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 약속 뒤집은 복지부
복지부는 4월부터 법정 감염병을 진단하는 체외진단검사 기기에 선진입 후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31일 발표했다. 평균 390일 걸리는 체외진단기기 시장 진입 절차를 140일로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체외진단기기는 사람의 대변, 소변, 혈액 등으로 질환 유무를 진단하는 기기다. 몸 밖에서 검사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 그동안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을 논문으로 평가하는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한 체외진단기기는 하나도 없다. 복지부가 평가 절차를 줄여도 환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체외진단기기의 시장 진입에 걸리는 기간은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 스스로 약속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허가받은 체외진단기기가 시장에서 쓰이려면 식약처 의료기기 허가(80일)를 받은 뒤 심평원에서 이 기기를 활용한 의료행위가 새로운 기술인지 판단(30~60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새 기술이라고 판단되면 복지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의료기술에 관한 논문을 받아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140~280일)하고 이후 심평원은 건강보험 혜택 범위를 결정(100일)한다. 심평원, 복지부 평가가 2중, 3중 심사라는 비판이 많았던 이유다.
심평원·복지부 평가 절차 그대로 남아
복지부 최종안에는 기존 절차가 그대로 남았다. 심평원에서 새 기술 여부를 판단(30일)한 뒤 복지부에서 사업 대상 여부를 다시 판단(30일)한다. 이렇게 허가받은 체외진단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도 제한된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나 병리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만 쓸 수 있다. 복지부는 “체외진단기기를 활용한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부처 이기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가 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총리실 산하 처로 승격된 뒤 의료기기 허가와 이 기기를 활용한 기술 검증 과정이 두 부처로 이원화되면서 긴밀한 협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단계적으로 (체외진단기기는) 사후평가로 전환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약속도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복지부의 규제개혁 후퇴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새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환자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대에 막혀 한 차례 연기됐다.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항목 확대를 두고도 복지부는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12개로 제한한 DTC 항목을 121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생명윤리단체 등의 반대 목소리에 57개로 줄였다. 이후 유전자 분석 업계에서 반발하자 최근 다시 항목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개혁을 약속한 뒤 이를 지키지 않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사업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8개월이 지났다. 보건복지부는 세부안을 내놨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약속보다 심사기간이 60일 더 길어졌다. 없애기로 했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복지부 평가 절차도 기간만 짧아졌을 뿐 그대로 남았다. 파격적인 규제 혁신을 고대했던 업계에서는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 약속 뒤집은 복지부
복지부는 4월부터 법정 감염병을 진단하는 체외진단검사 기기에 선진입 후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31일 발표했다. 평균 390일 걸리는 체외진단기기 시장 진입 절차를 140일로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체외진단기기는 사람의 대변, 소변, 혈액 등으로 질환 유무를 진단하는 기기다. 몸 밖에서 검사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 그동안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을 논문으로 평가하는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한 체외진단기기는 하나도 없다. 복지부가 평가 절차를 줄여도 환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체외진단기기의 시장 진입에 걸리는 기간은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 스스로 약속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라 허가받은 체외진단기기가 시장에서 쓰이려면 식약처 의료기기 허가(80일)를 받은 뒤 심평원에서 이 기기를 활용한 의료행위가 새로운 기술인지 판단(30~60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새 기술이라고 판단되면 복지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의료기술에 관한 논문을 받아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140~280일)하고 이후 심평원은 건강보험 혜택 범위를 결정(100일)한다. 심평원, 복지부 평가가 2중, 3중 심사라는 비판이 많았던 이유다.
심평원·복지부 평가 절차 그대로 남아
복지부 최종안에는 기존 절차가 그대로 남았다. 심평원에서 새 기술 여부를 판단(30일)한 뒤 복지부에서 사업 대상 여부를 다시 판단(30일)한다. 이렇게 허가받은 체외진단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도 제한된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나 병리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만 쓸 수 있다. 복지부는 “체외진단기기를 활용한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부처 이기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식약처가 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총리실 산하 처로 승격된 뒤 의료기기 허가와 이 기기를 활용한 기술 검증 과정이 두 부처로 이원화되면서 긴밀한 협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은 앞서 “단계적으로 (체외진단기기는) 사후평가로 전환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약속도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복지부의 규제개혁 후퇴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새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환자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대에 막혀 한 차례 연기됐다.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항목 확대를 두고도 복지부는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12개로 제한한 DTC 항목을 121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생명윤리단체 등의 반대 목소리에 57개로 줄였다. 이후 유전자 분석 업계에서 반발하자 최근 다시 항목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개혁을 약속한 뒤 이를 지키지 않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사업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