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를 연구할 국내외 전문가를 대거 영입했다. 미래 신기술을 ‘선점’하고, 산업의 경계를 넘어 적극적으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AI·빅데이터·로봇분야 석학 대거 영입
삼성전자는 AI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위구연 미국 하버드대 전기공학·컴퓨터과학과 석좌교수를 ‘펠로우’로 영입했다고 31일 발표했다. 펠로우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나 석학에게 주는 연구 분야 최고직이다. 위 교수는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비행 곤충 로봇인 로보비의 센서와 프로세서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한 AI 프로세서 부문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삼성전자 AI 연구를 총괄하는 삼성리서치에 소속돼 인공신경망 기반 차세대 AI 프로세서를 연구하게 된다.

삼성전자, 하버드대 교수에 AI…애플·아우디 출신에 마케팅 맡긴다

삼성전자가 위구연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영입한 것은 석학 중심의 ‘S급 인재풀’을 확보하겠다는 회사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단순 엔지니어 수준을 넘어 세계적으로 저명한 분들을 모셔오겠다”(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장 겸 삼성리서치 소장)는 방침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지난해 6월 인공지능(AI) 분야 세계적 석학인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뇌과학연구소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다니엘 리 코넬대 전기공학과 교수를 부사장으로 영입한 뒤 9개월 만이다. 위 교수는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겸직하는 조건으로 영입됐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AI 프로세서 관련 연구를 한다. 삼성전자가 외부 인사에게 펠로우 직급을 부여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내 펠로우는 3명뿐이었다. 위 교수의 합류로 펠로우는 4명이 됐다.

세계적 석학·전문가 잇달아 영입

삼성전자의 인재 확보는 AI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장우승 전 아마존 선임과학자를 무선사업부 빅데이터 개발을 총괄하는 전무로 영입했다. 장 전무는 미국 미주리대 산업공학과 교수를 지냈다. 2015년부터 아마존 선임과학자로 일하며 사용자 분석을 통한 물량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다.

로봇 기술 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강성철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료로봇연구단장도 전무로 기용했다. 그는 KIST에서 의료, 구조, 국방, 우주항공 등 다양한 분야의 로봇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패션 마케팅 전문가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까지 정보기술(IT) 기업의 영역을 넘어선 외부 인재도 수혈했다. 무선사업부 리테일·이커머스 총괄 부사장으로 온 윌리엄 김 전 올세인츠 최고경영자(CEO)가 대표적이다.

구찌, 버버리를 거쳐 2012년 영국 패션 브랜드 올세인츠 CEO를 맡아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 주역이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인 그는 “아날로그는 설탕보다 나쁘다”며 올세인츠 마케팅은 물론 제조, 물류, 판매 등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바꿨다. 온라인 매장을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며 ‘디지털 전환’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삼성전자 GDC(global direct to consumer)센터를 이끌며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강화해 스마트폰 판매를 늘리는 역할을 맡는다.

북미·유럽서 현지 마케팅 전문가 기용

삼성전자는 민승재 폭스바겐 미국 디자인센터 총괄 디자이너도 디자인경영센터 상무로 영입했다. 민 상무는 폭스바겐에서 제품 디자인과 사용자경험(UX) 디자인을 융합한 차세대 디자인을 주도했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는 전장 부문을 포함해 IT 전반의 미래 디자인 트렌드를 읽고 선행 디자인을 기획하는 일을 하게 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법인의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북미·유럽에서도 현지 마케팅 전문가를 수혈했다. 미국 법인은 경쟁사인 애플에서 채널 마케팅을 총괄했던 제임스 피슬러를 TV·오디오 등 홈엔터테인먼트 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현지 임원으로 임명했다. 구주총괄 마케팅 책임자(CMO)로는 아우디 등에서 마케팅을 맡았던 벤자민 브라운을 선임했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재 영입은 IT,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인재를 미리 확보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나 한국계 2세를 집중적으로 영입하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언어적 차이를 쉽게 극복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문화적 이질감이 작아 한국의 기업 문화를 잘 이해하고 시너지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우수 인재 영입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