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증시가 ‘안갯속’에 놓였다. 세계 최대 수요처인 미국과 중국 등의 경기가 둔화하면서 신흥국 경기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한국 코스피지수는 연초 급반등 이후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연초 강세장에서 소외됐던 인도 증시는 이달 열릴 총선을 앞두고 지난달에서야 급등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승세를 이어온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는 연금개혁을 둘러싼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에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다. 신흥국 증시를 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에 기대와 불안이 뒤엉킨다.

이런 가운데 ‘역발상 투자’를 강조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상훈 이스트스프링 인베스트먼트 글로벌 이머징마켓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그 중 하나다. 이 매니저는 “신흥국에 대한 우려가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지만 장기보유할 만한 우량주를 싸게 사려는 투자자에겐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 매니저는 싱가포르에 있는 이스트스프링 인베스트먼트에서 신흥아시아 주식 전략을 맡고 있다.

이 매니저는 “지난 10년간 신흥시장 가치주가 성장주나 모멘텀주, 퀄리티주에 비해 성과가 좋지 않았다”면서 “시장의 흐름과 증시 스타일이 바뀌는 사이클을 고려할 때 지금은 신흥국 가치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 설정된 ‘이스트스프링 글로벌 이머징 펀드’가 자산 대부분을 투자하는 ‘이스트스프링 GEM 다이나믹 에쿼티 펀드’를 운용한다. 신흥시장에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낮다고 평가한 가치주에 투자하는 펀드다.

그는 중국 증시가 역사상 유례 없던 양극화 상태에 있다고 보고 있다. ‘BATJ’(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징둥)로 대표되는 인터넷 관련 종목과 헬스케어 관련 종목은 매우 고평가된 반면 이외 대부분의 종목들은 극심한 저평가 상태에 있다는 분석이다. 경기민감 산업재, 에너지, 금융, 자동차·가전 등 임의소비재 등에 밸류에이션 매력이 높은 종목이 많다고 진단했다.
이 매니저는 “시장 가격은 단기 전망을 반영하는 경향이 크지만 장기투자자라면 사이클 너머를 볼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기초체력에 문제가 없는데 경기에 대한 우려 등에 눌려있는 종목을 값싼 상태에서 사두는 건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국 증시는 업종에 무관하게 전반적으로 저평가돼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멕시코도 저평가 매력이 높아 투자 기회가 많다고 진단했다. 반면 브라질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많이 오른 상태라 밸류에이션 매력은 비교적 낮다고 보고 있다.

‘이스트스프링 글로벌 이머징 펀드’ 포트폴리오의 현재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2배다. MSCI 신흥시장(EM) 지수의 지난 10년 평균 PBR(1.8배)보다 낮다. 이 매니저는 “시장은 장기적으로 평균선을 향해 간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직 50% 이상의 상승 여력이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펀드는 대만 반도체 제조사 TSMC(5.5%), 삼성전자(4.7%), 중국 건설은행(3.9%)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디어기업 내스퍼스(3.4%), 인도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 인포시스(3.2%) 등을 많이 편입하고 있다(지난 2월 말 기준). 러시아 국영은행 스베르방크(3.1%), 브라질 정유회사 페트로브라스(2.6%) 등도 비중 상위권에 있다.

‘이스트스프링 글로벌 이머징 펀드 1호’는 연초이후 8.25%(3월29일, C4형 기준)의 수익을 올렸다. 신흥국 주식형 펀드 65개의 같은 기간 수익률(11.22%)보다는 낮다. 최근 1년, 3년 수익률은 각각 -8.22%, 18.91%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