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이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16.6% 급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주 1분기 ‘어닝쇼크’를 예고했다. D램 가격마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반도체와 관련해 온통 암울한 소식뿐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상승세다. 하반기부터는 업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에 ‘한발 앞서 움직이는’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펀드매니저 사이에서도 ‘지금이라도 살 때’라는 의견과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외국인은 반도체 ‘올인’

1일 코스피지수는 27.61포인트(1.29%) 오른 2168.28에 마감했다.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0.90%)와 SK하이닉스(3.23%)가 지수를 끌어올렸다. 올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16.41%, 26.61% 상승했다.

반도체주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외국인 투자자다. 외국인은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491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는데 이 중 87%인 3조8974억원을 두 종목에 쏟아부었다. 국내 운용사도 지난달부터 매수에 동참했다. 공모와 사모펀드를 통틀어 운용사들은 지난달 SK하이닉스를 919억원, 삼성전자를 4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요즘 전략회의를 하면 절반이 넘는 시간을 반도체주 매수 시점에 관해 토론하는 데 쓴다”고 전했다.

“중장기 전망은 밝지만…”

김영민 토러스투자자문 대표와 최광욱 제이앤제이자산운용 대표는 “지금 사야 할 때”라고 말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와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상용화로 데이터센터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게 근거다. 최 대표는 “글로벌 운용사인 블랙록이 지난 2월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매입해 지분율이 5%를 넘었다고 공시했듯이 해외 펀드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주를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삼성전자는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주당순자산) 1.1배, SK하이닉스는 0.85배일 때가 바닥이었다”며 “지금 가격은 부담 없는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황이 나아질 것이란 점엔 동의하지만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있다. 2017년 초 삼성전자를 전량 매도했던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다시 사들일 시점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가장 기술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고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중장기 관점도 밝다”면서도 “다만 업황 개선 기대가 너무 빨리 주가에 반영되고 있어 당장 매수는 부담스러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용현 KB자산운용 매니저는 “삼성전자가 1분기 실적을 사전 공시했던 것처럼 2분기 실적도 예상보다 더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에 이후에 매수 시점을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7조4621억원이다. 석 달 전보다 37.8% 줄었다.

“공급 줄지 않을 것”

제이 신 아스트라자산운용 글로벌헤지운용본부장은 가장 보수적인 시각을 내놨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산하 운용사, 모건스탠리 등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전문 매니저로 활동했던 신 본부장은 국내 반도체주에 대해 “롱(보유)보다 쇼트(공매도)해야 할 구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재고가 줄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업황이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 증가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감산 계획을 발표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금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감산에 동참하기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점유율을 늘리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공급 감소로 가격이 반등할 것이란 시장 기대와 반대되는 분석이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