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실과 동떨어진 총리의 경제 인식
지난달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정부의 경제 성과를 말해보라”는 야당 의원 질책에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가신용등급 역대 최고, 외환보유액 최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장률 2위, 국가부도 위험 최저 등을 문재인 정부의 ‘잘한 일’로 내세웠다. 야당 의원들을 공박하며 내세운 객관적 지표지만 이 총리의 답변은 문재인 정부가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들만의 인지 부조화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하다.

외환보유액은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지정학적 위험이 크고 수출 의존도가 높아 외환보유액을 가능한 한 많이 가져가고 있다. 그 결과 외환보유액은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곤 경제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왔다. 외환보유액은 무역을 정상적으로 하는 데 필요한 보험과도 같아서 당연히 경제 규모와 상대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26.4%를 정점으로 최근 24.3%까지 떨어졌다. 지난 5년 중 최저 수준이고 국제 순위도 7위에서 8~9위로 떨어졌다.

국가신용등급은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S&P, 피치가 발표한다. 이 중 피치는 이명박 정부 때 한국 신용등급을 지금의 최고 등급으로 상향 조정했고, 무디스와 S&P는 박근혜 정부 때 올렸다. 외환위기 이후 노무현 정부 때만 국가신용등급이 오르지 않고 횡보했다. 툭하면 전(前) 정권 탓을 하는 현 정부가 자신들의 공적으로 이전 정부가 이룬 실적을 갖다 댄 것이다.

국가부도 위험 지표로 활용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사실 외환보유액이나 국가신용등급과 의미가 같은 지표로, 별개로 내세울 만한 게 아니다. 이 지표는 글로벌 경기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선진국 지표는 동기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정부가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켰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2017~2018년 글로벌 경기 확장이 반영돼 나타난 것이다. 이 위험지수가 올 들어서는 반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OECD 국가 중 성장률 선두에 있다는 주장은 가짜뉴스에 속한다. 아직 최종 성장률이 다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 순위는 OECD 35개국 중 20위로 해마다 급전직하하고 있다. 오류를 지적하자 이 총리는 5000만 명 이상 인구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국가 중 성장률이 2위라고 말을 바꿨다. 총리가 말한 조건에 속하는 나라는 한국을 빼면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이다. 이들 국가는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고 1인당 국민소득도 4만5000~6만5000달러로 한국의 1.5배에서 2배 이상이다. 당연히 경제 성장 속도가 한국보다 느린 것이 정상이다. 한국에 비해 1인당 소득이 2배 이상 많고, 경제 규모가 13배나 되는 미국이 지난해 한국보다 성장률이 높은 것을 보고도 이런 단순 비교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

국무총리의 부적절한 통계 제시가 위험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세운 지표 대부분이 국가부도에 관한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는 단기적인 외환위기가 아니다. 국제경쟁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잠재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져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50%가 넘는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생산성 향상으로 흡수해야 하는데 이는 앞으로 수십 년 이상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제조업 일자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벗어나 2009년부터 차분하게 반등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과격한 정책의 충격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파괴됐다. 이 와중에 총리부터 왜곡된 통계로 국회와 국민을 호도하고 있으니 우리 경제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심대하게 훼손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