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수출 성적표는 암울하다. 올 1월만 해도 10대 품목 중 마이너스는 6개에 그쳤다. 5대 수출 지역도 중국 하나만 감소를 보였다. 두 달 새 수출 마이너스 품목은 9개로 불어났고, 수출 감소 지역도 4개로 늘었다. 수출이 기댈 곳 없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셈이다.

수출 10대 품목 중 9개 무너졌는데…"이달부터 회복" 낙관하는 정부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낙관론을 외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월 수출 실적이 발표된 1일 “4월부터는 수출이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부진한 수출 실적 발표 때에도 “하반기부터 좋아질 것”이라고 했던 산업부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비관적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상반기 전체로도 마이너스를 피할 수 없고 하반기 반등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조차 수출을 좌우하는 반도체 경기와 관련, “회복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반도체·중국 쇼크 수출에 치명타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1년 전보다 8.2% 감소한 471억1000만달러였다. 하루평균으로 따져도 4.1% 줄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수출 마이너스 행진은 4개월로 길어졌다.

수출 대들보인 반도체 부진이 치명적이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달 16.6% 줄었다. 지난해 12월(-8.4%), 올 1월(-23.3%), 2월(-24.8%)에 이어 넉 달 연속 감소다. 이런 탓에 지난해 최고 24.6%까지 찍었던 반도체 수출 비중은 지난달 19.1%로 쪼그라들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 단가 하락폭이 갈수록 커지는 데다 주요 거래처인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재고를 쌓아놓고 주문을 미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시장 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는 올초 D램 고객사의 재고 분량을 6주일치로 예상했으나 최근엔 ‘6주일 이상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수출 2위 품목이자 ‘숨겨진 수출 효자’로 꼽히는 일반기계도 지난달 감소(-1.3%)로 돌아섰다. 작년 12월 이후 4개월 만이다. 수출 3, 4위인 석유화학과 석유제품도 각각 10.7%, 1.3% 줄었다. 디스플레이(-16.3%)와 무선통신기기(-32.3%) 수출 부진 역시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지역별로는 지난해 수출의 26.8%를 차지했던 중국의 부진이 뼈아프다. 중국으로의 수출은 지난달 15.5% 줄며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를 보였다. 미·중 무역분쟁 영향이 본격화한 데다 중국 내수시장이 침체 조짐을 보인 탓이다. 중국 경기 둔화로 동남아시아 경제가 덩달아 불안해지면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수출도 7.6% 줄었다. 아세안 시장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곳이다. 일반기계 수출 감소 역시 중국의 산업용기계 생산량 하락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유럽연합(-10.9%), 일본(-12.8%) 수출도 큰 폭으로 줄었다.
수출 10대 품목 중 9개 무너졌는데…"이달부터 회복" 낙관하는 정부
“하반기 수출 회복도 장담 못해”

산업부는 2분기부터 수출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있어 관련 업종의 수출 회복이 기대된다는 점을 들었다. 석유제품 수출은 2월 -13.8%에서 3월 -1.3%로 감소폭이 크게 줄었다. 조선이 조심스럽지만 회복세인 점도 긍정적이다. 조선은 수주 실적 반영까지 2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2017년 수주 회복기의 실적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달 선박 수출은 5.4% 증가하며 10대 품목 중 유일하게 플러스를 나타냈다. 올 2분기 조업 일수가 전년 동기 대비 2.5일 많은 것도 부진 완화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하지만 불안 요소도 적지 않다. 침체된 세계 경기 속에 분전하는 미국 경기마저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대(對)미국 수출 증가율은 2월 16.0%에서 지난달 4.0%로 크게 꺾였다. 반도체 경기도 당초 예상보다 회복이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심해지고 국제 유가가 다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골드만삭스 등 해외 투자은행(IB)은 수출 부진이 길어지면서 한국의 경상수지가 다음달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 상반기는 수출 마이너스가 불가피하고 하반기도 불확실성이 너무 많아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스템반도체와 2차전지 등 미래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수출 회복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