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경상수지 적자의 '악몽'
1986년은 한국 경제사에서 잊지 못할 해다.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 데뷔한 이래 최초로 46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과 1925년 2년 연속 경상흑자를 내긴 했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 쌀을 대량 수입하던 예외적 시기였던 만큼, 1986년이 갖는 의미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1986년 무렵은 ‘외채 망국론’이 득세하던 시기였고, 외채 위기의 본질은 경상수지 적자였다. 적자에 따른 외화자금 부족을 메꾸느라 해외 차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경제구조였던 것이다. 경상흑자 달성은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불렀다. 이전 정부에서 ‘고도성장 후유증’을 물려받은 전두환 정부는 자신감을 회복해 ‘안정화 시책’을 밀어붙였고 초유의 ‘3저 호황’으로 이어졌다.

지식인 사회에 끼친 영향도 막대했다. ‘종속이론’류의 좌파·진보경제학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확산됐다. “한국 같은 대외종속적 국가에서는 자립적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주창자 안병직 서울대 교수는 경상흑자를 계기로 ‘학문적 전향’을 단행했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폐기하고 “제3세계에서도 자립적인 자본주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중진자본주의론’으로 갈아탔다. 많은 후학이 안 교수를 따랐고, 한국의 정치경제학은 비로소 실증 학문의 면모를 되찾았다.

경상수지에 얽힌 가장 아픈 기억을 꼽자면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일 것이다. 우리 경제는 1990년부터 다시 적자 늪에 빠져 1996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238억달러의 경상적자를 기록했고, 이듬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4월 경상수지가 7년3개월(87개월) 만에 적자전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수출 둔화가 가파른 데다,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금 지급시기가 겹친 탓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작년 경상적자 1~3위에는 미국(4620억달러) 영국(914억달러) 캐나다 (556억달러) 등 선진국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흑자가 너무 크면 물가를 압박하고 경제 거품을 유발한다며 ‘수지 균형’을 최상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더구나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4047억달러(2019년 2월 말 기준)에 달한다. 경상적자가 좀 난다 한들 대외신인도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친다는 의미다. 그래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경상적자는 언급만으로도 긴장감을 높이는 핵심지표다. 대외의존도가 세계 최고수준인 소규모 개방경제에서의 중요성도 남다르다. 경상수지 급감에 따른 피해를 경상(輕傷)으로 막아내기 위한 지혜가 절실하다.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