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형곤 젬백스앤카엘 대표가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췌장암 치료제 ‘GV1001’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송형곤 젬백스앤카엘 대표가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췌장암 치료제 ‘GV1001’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해 국내에서 응급임상에 가장 많이 사용된 치료제는 젬백스앤카엘의 면역항암제 ‘리아백스(GV1001)’다. 전체 685건 중 209건(30%)이었다. 응급임상은 생명이 위독하지만 치료 대안이 없는 환자가 개발 중인 의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다. 주로 췌장암, 유방암 말기 환자가 리아백스를 처방받았다. 송형곤 젬백스 대표는 “올해 국내에서 췌장암 임상 3상을 마치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께 정식 허가 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췌장암 치료제, 내년 상반기 정식 허가 신청"
“대안 없는 췌장암 약 꼭 개발”

199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카엘’이란 이름의 반도체 필터 전문 기업이었다. 의사 출신 창업자인 김상재 회장은 고정적인 수입원을 바탕으로 바이오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2008년 카엘은 노르웨이의 바이오기업 젬백스를 인수했다. 송 대표는 “당시 리먼브러더스 사태 여파로 유럽의 바이오벤처들이 헐값에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두 회사 이름을 합쳐 젬백스앤카엘이 탄생했다. 김 회장과 한양대 의대 동문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응급의학과장을 맡고 있던 송 대표는 2015년 김 회장의 권유로 합류했다.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말단에 붙어있는 유전물질인 텔로미어가 짧아지면서 점점 노화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시키는 효소인 텔로메라아제가 과다 발현돼 계속 증식한다. GV1001은 노르웨이 면역학자인 구스타프 가더넥이 텔로메라아제로부터 16개 아미노산을 추출해 결합한 물질이다. 송 대표는 “이 물질을 체내에 주입하면 텔로메라아제가 많이 발생하는 암세포를 인지하고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파괴한다”고 했다.

젬백스는 인수 당시 GV1001로 췌장암을 적응증으로 한 임상 3상을 영국에서 하고 있었다. 췌장암은 텔로메라아제가 가장 많이 발현되는 암이다.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을 2012년 마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임상 데이터를 재검토한 결과 ‘이오탁신’이라는 바이오마커가 많이 발현되는 췌장암 환자에게 약효가 우수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10여 개 의료기관에 한해 치료제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송 대표는 “영국 임상이 실패한 것은 사업화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아직까지 대안이 없는 췌장암을 극복하기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종 허가를 위해 2015년 화학항암제와 병용하는 국내 임상 3상에 나서 지난해 11월 췌장암 환자 148명 모집을 완료했다. 올해 11월 임상이 끝나면 내년 상반기 최종보고서가 나온다.

美서 치매 임상 2상 연내 시작

젬백스는 GV1001로 알츠하이머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2017년 8월부터 한양대구리병원 등 12개 의료기관에서 임상 2상을 시작해 최근 중등도 이상인 환자 90명 모집을 마쳤다. 투약 기간은 6개월로, 늦어도 10월께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조건부 허가를 받은 뒤 내년 임상 3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송 대표는 “이규용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GV1001이 아밀로이드베타를 줄이고 타우단백질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염증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올 하반기에 임상 2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달 중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는 “가장 모험을 하고 싶은 게 알츠하이머 치료제”라며 “임상 2상까지는 직접 하고 임상 3상은 다국적 제약사와 협업할 것”이라고 했다.

2017년에는 전립선비대증 치료제 국내 임상 2상을 마쳤다. 올해 임상 3상에 들어간다. 젬백스는 연구개발 중심의 바이오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 대표는 “GV1001은 텔로메라아제 유래 아미노산 1600개 중 16개만 선별해 만든 것”이라며 “추후 개발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