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상통화' 명칭 '암호자산'으로 변경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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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아닌 투자·투기 대상' 국제사회 인식 반영
한때 돈의 역사를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가상화폐' 발행이 고사 수준으로 쪼그라든 가운데 일찌감치 가상통화를 법률 용어로 도입한 일본이 고민에 빠졌다.
해킹에 의한 탈취 사건 등이 잇따르고 시장 자체도 가라앉으면서 "통화"라는 이름에 걸맞은 결제수단으로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해 가상통화라는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일 전했다.
가상통화는 블록체인이라는 인터넷상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전자 데이터의 통칭이다.
일본에서는 자금결제법에 법률 용어로 도입됐다.
자금결제법은 은행 이외의 송금업자나 전자화폐업자 등의 송금·결제에 관한 사항들을 규정한 법이다.
금융청은 법률적으로도 새로운 개념인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업계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이 법을 선택했다.
가상통화의 송금·결제 기능을 중시한 결과다.
가상통화 규제에는 주식이나 증권을 규제하는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자금결제법을 선택했다.
논의 과정에서 일부 관계자들은 "비트코인은 결제수단인가, 아니면 투자대상인가", 또는 "일본에서는 투자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투자 측면에 중점을 두고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무국 역할을 맡은 금융청이 정리해 위원들이 승인한 '결제업무 등의 고도화에 관한 워킹 그룹(WG)'의 보고서는 당초 방침대로 가상통화를 결제수단으로 간주해 규제할 것을 제안했다.
가상통화가 테러자금 등 자금세탁에 이용될 것을 경계해 법정통화를 가상통화로 교환하는 창구역할을 하는 교환업자에게 등록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WG의 제언에 따라 2016년 개정 자금결제법이 제정됐다.
이 법을 보면 당시 금융청이 가상통화를 결제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이 잘 드러난다.
가상통화를 인터넷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재산적 가치'로 정의하고 ▲대금지급이나 엔, 달러화 등의 법정통화와 교환 가능 ▲전자적으로 기록되고 이전이 가능 ▲법정통화나 전자화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청 관계자는 "당시에는 해외에서도 '버추얼 커런시(가상통화)'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어서 법률 용어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가상통화는 법률용어가 됐다.
이후 2년이 채 못돼 교환업체 코인체크에서 가상통화 580억 엔(약 5천800억원) 상당이 부정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로 전해 봄 개정자금결제법이 시행돼 공교롭게도 가상통화 투자에 대한 안심감이 확산해 일본의 개인투자가들의 대거 뛰어들었다.
비트코인 시세는 1년만에 20배 이상으로 올랐다.
송금과 결제수단으로의 이용은 확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의 부정유출사건이 터지자 결제수단으로서의 가상통화에 대해 의문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자금결제법상의 '통화'로 업자에게 등록제를 도입한 건 세계에 자랑할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연간 100배, 200배나 오르는 건 결제수단으로로서의 통화가 아니라 유가증권으로 투자와 투기상품으로 관리해야 한다"
사건 후 희망의 당(현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대표는 이렇게 주장했다.
가상통화의 '통화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금융상품으로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견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가상통화라는 명칭이 위협받고 있다.
작년 3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성명도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G20 차원에서 가상통화의 자금세탁 악용대책 등을 처음 논의한 자리였지만 시간을 연장하기 까지 한 끝에 나온 공동성명에는 가상통화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았다.
"암호자산은 통화의 중요한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
성명은 버추얼 커런시라는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암호자산'을 의미하는 '크립토 애셋(Crypto Asse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국제사회가 결속해 규제해야 할 대상은 '통화'의 일종이 아니라 '금융자산'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성명은 "암호자산은 소비자와 투자가 보호, 시장의 건전성, 탈세, 자금세탁, 테러자금공급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자금세탁정책 등을 심사하는 금융활동작업부회(FATF)도 그동안 써오던 버추얼 커런시 대신 요즘은 버추얼 애셋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라는 표현은 급속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일본 금융청도 이런 흐름에 맞춰 작년 말 가상통화 부정 유출사건을 계기로 설치된 전문가회의에 법률용어로서의 가상통화를 암호자산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전문가회의 멤버인 이와시타 나오유키(岩下直行) 교토(京都)대 대학원 교수는 "암호자산이라는 명칭이 정착해가고 있는데 일본만 가상통화를 공식 명칭으로 계속 사용하는 건 국제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른 멤버로부터도 별다른 이견이 제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는 가상통화의 대표인 비트코인이 발행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가상통화'라는 표현을 '암호자산'으로 바꾸는 내용의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각의에서 승인,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
한때 돈의 역사를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가상화폐' 발행이 고사 수준으로 쪼그라든 가운데 일찌감치 가상통화를 법률 용어로 도입한 일본이 고민에 빠졌다.
해킹에 의한 탈취 사건 등이 잇따르고 시장 자체도 가라앉으면서 "통화"라는 이름에 걸맞은 결제수단으로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해 가상통화라는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일 전했다.
가상통화는 블록체인이라는 인터넷상의 시스템을 이용하는 전자 데이터의 통칭이다.
일본에서는 자금결제법에 법률 용어로 도입됐다.
자금결제법은 은행 이외의 송금업자나 전자화폐업자 등의 송금·결제에 관한 사항들을 규정한 법이다.
금융청은 법률적으로도 새로운 개념인 '가상화폐'를 취급하는 업계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이 법을 선택했다.
가상통화의 송금·결제 기능을 중시한 결과다.
가상통화 규제에는 주식이나 증권을 규제하는 금융상품거래법을 적용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자금결제법을 선택했다.
논의 과정에서 일부 관계자들은 "비트코인은 결제수단인가, 아니면 투자대상인가", 또는 "일본에서는 투자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투자 측면에 중점을 두고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무국 역할을 맡은 금융청이 정리해 위원들이 승인한 '결제업무 등의 고도화에 관한 워킹 그룹(WG)'의 보고서는 당초 방침대로 가상통화를 결제수단으로 간주해 규제할 것을 제안했다.
가상통화가 테러자금 등 자금세탁에 이용될 것을 경계해 법정통화를 가상통화로 교환하는 창구역할을 하는 교환업자에게 등록제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WG의 제언에 따라 2016년 개정 자금결제법이 제정됐다.
이 법을 보면 당시 금융청이 가상통화를 결제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이 잘 드러난다.
가상통화를 인터넷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재산적 가치'로 정의하고 ▲대금지급이나 엔, 달러화 등의 법정통화와 교환 가능 ▲전자적으로 기록되고 이전이 가능 ▲법정통화나 전자화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청 관계자는 "당시에는 해외에서도 '버추얼 커런시(가상통화)'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어서 법률 용어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가상통화는 법률용어가 됐다.
이후 2년이 채 못돼 교환업체 코인체크에서 가상통화 580억 엔(약 5천800억원) 상당이 부정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로 전해 봄 개정자금결제법이 시행돼 공교롭게도 가상통화 투자에 대한 안심감이 확산해 일본의 개인투자가들의 대거 뛰어들었다.
비트코인 시세는 1년만에 20배 이상으로 올랐다.
송금과 결제수단으로의 이용은 확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의 부정유출사건이 터지자 결제수단으로서의 가상통화에 대해 의문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자금결제법상의 '통화'로 업자에게 등록제를 도입한 건 세계에 자랑할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연간 100배, 200배나 오르는 건 결제수단으로로서의 통화가 아니라 유가증권으로 투자와 투기상품으로 관리해야 한다"
사건 후 희망의 당(현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대표는 이렇게 주장했다.
가상통화의 '통화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금융상품으로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의견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가상통화라는 명칭이 위협받고 있다.
작년 3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성명도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G20 차원에서 가상통화의 자금세탁 악용대책 등을 처음 논의한 자리였지만 시간을 연장하기 까지 한 끝에 나온 공동성명에는 가상통화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았다.
"암호자산은 통화의 중요한 특성을 결여하고 있다"
성명은 버추얼 커런시라는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암호자산'을 의미하는 '크립토 애셋(Crypto Asse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국제사회가 결속해 규제해야 할 대상은 '통화'의 일종이 아니라 '금융자산'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성명은 "암호자산은 소비자와 투자가 보호, 시장의 건전성, 탈세, 자금세탁, 테러자금공급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자금세탁정책 등을 심사하는 금융활동작업부회(FATF)도 그동안 써오던 버추얼 커런시 대신 요즘은 버추얼 애셋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라는 표현은 급속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일본 금융청도 이런 흐름에 맞춰 작년 말 가상통화 부정 유출사건을 계기로 설치된 전문가회의에 법률용어로서의 가상통화를 암호자산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전문가회의 멤버인 이와시타 나오유키(岩下直行) 교토(京都)대 대학원 교수는 "암호자산이라는 명칭이 정착해가고 있는데 일본만 가상통화를 공식 명칭으로 계속 사용하는 건 국제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른 멤버로부터도 별다른 이견이 제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는 가상통화의 대표인 비트코인이 발행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가상통화'라는 표현을 '암호자산'으로 바꾸는 내용의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각의에서 승인,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