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한국에 머크 같은 기업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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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철 논설위원
월마트, 보쉬, LVMH, 카길, 폭스바겐, BMW, 포드, 머크, 로레알, 하이네켄, 나이키….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글로벌 기업들이다. 월마트(유통), 폭스바겐(자동차), 보쉬(자동차 부품), 카길(곡물), LVMH(명품), 나이키(스포츠용품)는 세계 1위 기업이고 머크(제약·바이오), 하이네켄(맥주) 등도 해당 분야 상위권 기업이다.
이들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통점도 갖고 있다. 모두 가족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업력(業歷)이 100년을 넘는 곳이 적지 않다.
"가업승계 지원은 기업 육성책"
세계 최고(最古) 제약·바이오 기업인 독일 머크는 지난해 350주년을 맞았다. 지분 70.2%를 소유한 머크 가문이 13대째 가업(家業)을 이어오고 있다. 1886년 설립된 독일 보쉬는 창업주 이름을 딴 로버트 보쉬재단이 92%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솔루션 등의 분야로 확장해 지난해 매출 779억유로(약 99조1490억원)를 올렸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가족기업을 제외하면 산업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 포드를 포함해 독일 폭스바겐·BMW, 이탈리아 피아트 등이 가족기업이다.
특정 가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가족기업은 글로벌 기업에선 흔한 기업지배 형태다. 장기 안목을 갖고 선대(先代)의 기술과 노하우를 계승·발전시켜 전문화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포천 500대 글로벌 기업’의 약 3분의 1이 가족기업이다. 회계·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과 스위스 장크트갈렌대가 2017년 집계한 ‘글로벌 500대 가족기업’ 매출 합계는 6조5000억달러(약 7380조5600억원), 고용 직원 수는 2100만 명에 달했다.
선진국은 가업 상속을 ‘부(富)가 아니라 기술과 고용의 대물림’이라고 인식해 상속·증여세를 낮추고, 공제한도를 높이고 있다. 가업 승계를 촉진해 중소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게 국부(國富)와 고용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상속세율은 26% 정도다. 스웨덴 등 13개 국가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
'100년 가업' 막는 징벌적 상속세
우리나라는 상속세율이 최대 65%(대주주 30% 할증 시)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명목 세율은 50%로 벨기에(80%), 프랑스 (60%), 일본(55%)에 이어 네 번째로 높지만 실제 적용받는 세율은 가장 높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아들 등 직계비속이 가업을 승계할 때 각각 30%, 45%로 세율을 인하한다. 다양한 공제혜택도 주기 때문에 실제 부담하는 세율은 각각 3%, 11.5%에 그친다. 독일은 명목세율이 한국과 같지만 상속 공제제도를 활용하면 실효세율은 4.5%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장수기업 보유국인 일본에선 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후계자 구하기’가 꼽힌다. 세금 공제 및 유예 제도를 활용하면 가업 승계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한국은 상속세 공제 조건도 너무 까다롭다. 10년간 근로자 수 유지, 업종 변경 제한 등을 지켜야 한다. 스마트 공장 확산, 최저임금 급속 인상, 급격한 산업 변화 등을 감안하면 지키기가 쉽지 않다. 한 해 평균 상속 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이 독일은 1만8760여 개인 데 비해, 한국은 90여 곳에 불과하다. 쓰리세븐, 락앤락 등 국내 우량기업들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 탓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쉬, 머크와 같은 글로벌 장수 가족기업 출현을 기대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가업 승계 지원이 ‘부(富)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 육성책’이라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synergy@hankyung.com
이들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통점도 갖고 있다. 모두 가족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업력(業歷)이 100년을 넘는 곳이 적지 않다.
"가업승계 지원은 기업 육성책"
세계 최고(最古) 제약·바이오 기업인 독일 머크는 지난해 350주년을 맞았다. 지분 70.2%를 소유한 머크 가문이 13대째 가업(家業)을 이어오고 있다. 1886년 설립된 독일 보쉬는 창업주 이름을 딴 로버트 보쉬재단이 92%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솔루션 등의 분야로 확장해 지난해 매출 779억유로(약 99조1490억원)를 올렸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가족기업을 제외하면 산업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연 미국 포드를 포함해 독일 폭스바겐·BMW, 이탈리아 피아트 등이 가족기업이다.
특정 가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가족기업은 글로벌 기업에선 흔한 기업지배 형태다. 장기 안목을 갖고 선대(先代)의 기술과 노하우를 계승·발전시켜 전문화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포천 500대 글로벌 기업’의 약 3분의 1이 가족기업이다. 회계·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과 스위스 장크트갈렌대가 2017년 집계한 ‘글로벌 500대 가족기업’ 매출 합계는 6조5000억달러(약 7380조5600억원), 고용 직원 수는 2100만 명에 달했다.
선진국은 가업 상속을 ‘부(富)가 아니라 기술과 고용의 대물림’이라고 인식해 상속·증여세를 낮추고, 공제한도를 높이고 있다. 가업 승계를 촉진해 중소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게 국부(國富)와 고용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상속세율은 26% 정도다. 스웨덴 등 13개 국가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
'100년 가업' 막는 징벌적 상속세
우리나라는 상속세율이 최대 65%(대주주 30% 할증 시)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명목 세율은 50%로 벨기에(80%), 프랑스 (60%), 일본(55%)에 이어 네 번째로 높지만 실제 적용받는 세율은 가장 높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아들 등 직계비속이 가업을 승계할 때 각각 30%, 45%로 세율을 인하한다. 다양한 공제혜택도 주기 때문에 실제 부담하는 세율은 각각 3%, 11.5%에 그친다. 독일은 명목세율이 한국과 같지만 상속 공제제도를 활용하면 실효세율은 4.5%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장수기업 보유국인 일본에선 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후계자 구하기’가 꼽힌다. 세금 공제 및 유예 제도를 활용하면 가업 승계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한국은 상속세 공제 조건도 너무 까다롭다. 10년간 근로자 수 유지, 업종 변경 제한 등을 지켜야 한다. 스마트 공장 확산, 최저임금 급속 인상, 급격한 산업 변화 등을 감안하면 지키기가 쉽지 않다. 한 해 평균 상속 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이 독일은 1만8760여 개인 데 비해, 한국은 90여 곳에 불과하다. 쓰리세븐, 락앤락 등 국내 우량기업들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 탓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쉬, 머크와 같은 글로벌 장수 가족기업 출현을 기대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가업 승계 지원이 ‘부(富)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 육성책’이라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