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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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중 확정기여(DC)형은 펀드 투자가 핵심이다. DC형 가입자들이 원리금 보장 상품에 넣은 돈이 전체 적립금의 78.6%(2017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아직 투자에 소극적인 사람이 많긴 하다. 그러나 원리금 보장 상품이 아닌 실적배당 상품을 원한다면 투자 대상은 사실상 펀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앞으로 펀드를 이용해 퇴직연금을 굴리는 DC형 가입자가 늘어날 것은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하다. 풍요로운 노후를 위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불리려는 욕구가 갈수록 강해질 테니 말이다.

DC형 가입자들이 펀드에 넣은 돈은 약 7조원(2017년 기준)이다. 이를 펀드 유형별로 살펴보면 채권혼합형 펀드가 64.8%로 가장 많다. 채권혼합형 펀드는 채권에만 100%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와 달리 전체 자금의 40% 이내를 주식에 투자한다. 60% 이상을 주식이 아니라 채권 등에 투자하기 때문에 노후자금인 퇴직연금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동시에 주식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DC형 가입자의 니즈에 들어맞는 펀드 유형이다.

그렇다면 DC형 가입자는 펀드 투자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DC형 가입자의 펀드 투자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공개자료는 아직 없다. 그래서 DC형 가입자별로 원리금 보장 상품과 실적배당 상품에 어느 정도 투자하고 있는지, 실적배당 상품 중에선 어떤 펀드 유형에 얼마씩 투자하는지를 알기 어렵다. 다만 주변 DC형 가입자 상황을 토대로 세 가지 유형을 추정해 볼 수 있다.

DC형 가입자 중 다수를 차지하는 첫 번째 유형은 은행 예·적금이나 금리확정형 보험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 1개에 자신의 퇴직연금을 모두 넣어두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실적배당 상품에 관심을 두더라도 전체 금액을 펀드에 투자하기보다 원리금 보장 상품 1개와 펀드 1개에 나눠 넣는다. 세 번째 유형은 실적배당 상품으로만 퇴직연금을 관리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한두 개 펀드에 투자한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이 있긴 하지만, 모든 유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한 번 투자상품을 선택한 뒤에는 좀처럼 변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기적으로 투자 성과를 확인하고 새롭게 투자상품을 선정하는 적극적 투자관리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DC형 퇴직연금이 일반 펀드와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기 때문에 생긴다. 먼저 DC형 퇴직연금과 펀드의 공통점은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의 위험수용 성향과 투자 역량이 중요하다. 위험수용 성향이 강할수록 고위험·고수익 펀드에 쉽게 투자하고 DC형 퇴직연금 적립금을 주식 편입 비중이 높은 펀드에 넣게 된다. 또 금융투자 지식 등 투자 역량이 뛰어날수록 투자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차이점은 투자 목적, 투자 금액 결정, 투자 기간, 투자 대상, 투자 중단, 투자 결과 책임 등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인 펀드는 투자 목적이 다양하고 투자 금액과 투자 기간을 투자자가 자유롭게 결정한다.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형편에 따라 투자 중단도 제한 없이 결정할 수 있다.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발적으로 부담한다.

이와 달리 DC형 퇴직연금은 퇴직 후 사용할 노후 자금의 재원을 축적하는 게 목적이다. 투자 금액도 회사에서 매년 지급하는 액수가 정해져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개설해 투자 금액을 늘릴 수도 있다. 투자 기간도 퇴직 시점까지로 정해져 있고 원리금 비보장 상품 종류별로 투자한도가 있다. 중도 해지가 제한되며 DC형 가입을 결정하면 투자 결과 책임을 자동으로 지게 된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펀드는 모든 면에서 자유로움과 자발성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DC형 퇴직연금은 제한이 많다. 이런 차이가 펀드에 비해 DC형 퇴직연금에서 소극적 투자관리 행동이 나타나는 주요 원인이다. 일반적인 펀드 투자자는 스스로 필요에 의해 자신이 정한 금액을 투자하기 때문에 DC형 가입자보다 더 자발적으로 투자관리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DC형 가입자는 “어차피 퇴직할 때까지는 묶여 있는 돈이니 그냥 안전하게 묻어두자”는 생각을 하기 쉽다. “괜히 섣불리 투자했다가 노후 자금을 잃느니 원금이라도 확실하게 지키자”며 소극적 자세를 갖게 된다.

DC형 가입자라면 일반적인 펀드 투자와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퇴직연금에 대한 관리 의무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