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0.5%로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세 달 연속 0%대에 머물며 통화정책상 목표치 2.0%를 한참 밑돌고 있다. ‘디플레 경보’가 점점 확산하는 모습이다.

상품·서비스 가격 하락이 계속되는 디플레이션은 수요가 공급보다 적을 때 주로 나타난다. ‘물건 값이 싸지면 생활비가 절감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건 단견이다. 디플레에 빠지면 ‘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해 소비와 투자가 줄고, 다시 물가 하락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을 부른다. 미국 ‘대공황’과 일본 ‘잃어버린 20년’은 디플레에서 큰 불황으로 이전되는 과정의 전형이었다.

정부는 석유 채소 등의 공급 증가가 물가안정세를 주도한 만큼, 수요 부족 현상인 디플레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6개월의 한시적 유류세 인하가 종료되는 5월에는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덧붙인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3개월 연속 0%대 물가 상승’이라는 이례적 현상을 공급 측 요인으로만 치부하는 건 무리다. 투자 급감, 소비 부진 등의 수요 위축현상이 더 뚜렷하다는 점을 외면하는 건 곤란하다.

기업·가계·정부 등 경제주체들의 기초 체력이 급속도로 약화되는게 현실이다. 지난해 코스닥 매출 상위 20대 기업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직전 해보다 27% 감소한 반면 순차입금은 40% 급증했다. 중소기업들부터 빠르게 현금이 말라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계부채도 1534조6000억원으로 1500조원을 돌파했다.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취약차주’들의 빚이 급증하는 등 가계부채 품질 악화가 뚜렷하다. 국가부채 역시 1년 새 127조원 급증하며 1682조원으로 치솟았다.

더 주목해야 할 변수는 불안정성이 커지는 글로벌 환경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금 세계 경제는 깨지기 쉬운 상황”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나홀로 호황’이라던 미국까지 기준금리 인상 및 중앙은행 자산 감축 등의 ‘양적 긴축정책’을 최근 갑작스레 중단하며 디플레를 경계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는 동떨어진 경제인식으로 디플레를 자초하는 듯하다. 대통령부터 경제팀 수장들까지 몇몇 지표의 호전을 확대해석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모습이다. 최저임금제·주52시간제 등 핵심 정책에서 글로벌 트렌드인 유연화를 외면하고 ‘친노조’로 일관하는 데서 겉도는 인식이 잘 드러난다. “다 죽게 생겼다”는 현장 아우성을 자청해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징벌적 세제에 집착하는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자=죄악’이라는 낡은 인식으로 과격 규제를 남발하다 보니 ‘부채 디플레이션’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디플레이션은 저성장의 다른 얼굴인 만큼 해법은 ‘성장동력 회복’에 맞춰져야 한다. 디플레 신호들보다 더 심각하게 관찰해야 할 문제는 경제 전반의 우울증과 경제 주체들의 무력증 확산이다. 디플레이션 우려를 비껴가려면 정책 신뢰회복과 함께 한국 경제를 신바람으로 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