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자리 못 지킨 2.5兆 '최저임금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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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지원받은 3061곳 보니…
직원 수 1년새 오히려 '뒷걸음'
근로시간도 줄어 일용직 월급↓
직원 수 1년새 오히려 '뒷걸음'
근로시간도 줄어 일용직 월급↓
경기도의 한 아파트 경비업체 사장인 유모씨는 지난해 전체 직원 50여 명 중 20%인 10명을 내보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 1000만원 넘게 불어난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원 월급의 일부를 ‘일자리안정자금’이란 이름으로 지원해줬지만 전체 임금 인상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유씨는 “무턱대고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놓고 1인당 10여만원을 지원해주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된다”고 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덜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투입한 2조5137억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지원을 받은 업체의 근로자 수가 오히려 감소한 것은 물론 이들의 근로시간도 줄어든 것으로조사됐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3일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한국노동연구원의 ‘저임금 노동시장 지원 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은 사업체의 평균 근로자 수(작년 9월 기준)는 5.07명으로 전년보다 1.36% 감소했다. 월평균 근로시간(상용직)은 164.6시간으로 4% 줄었다. 임시·일용직의 근로시간은 87.4시간으로 무려 14.5% 감소했고, 그 결과 이들의 월평균 급여도 줄어들었다.
일자리안정자금이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고용 유지’에 기여할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연구원은 정부가 지난해 64만 개 업체에 지원한 일자리안정자금의 정책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3016개 수혜 기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했다.
정부는 올해에도 2조8188억원의 예산을 일자리안정자금으로 쓸 계획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3조원 미만의 자금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두 자릿수가 넘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부터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부담 덜어줄 해결사라더니…일자리 되레 줄인 '不안정자금'
작년 8월부터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이하 안정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건자재 유통업체 C사는 얼마 전 상근근로자 8명 중 3명을 줄였다. 안정자금을 받는 도중 직원을 해고하면 지원이 끊기지만, 지원 대상(월 보수 210만원 미만)이 아닌 직원을 내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사장 양모씨는 “10년 넘게 같이 일한 직원을 자르는 게 쉬운 일이었겠느냐”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급격히 늘어난 인건비 탓에 회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의 부메랑 효과
정부가 ‘일자리 안정’ 명목으로 지난해 2조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퍼붓고도 ‘고용 감소’를 막지 못한 것은 비효율적인 자금 집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책 연구소인 한국노동연구원도 “안정자금 지원으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
안정자금은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월급 210만원(최저임금의 120%) 미만 근로자에게 월 최대 15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5만여 개 사업장에서 264만 명가량이 지원금을 받았다. 1인당 평균 95만원 꼴이다. 정부는 작년 초 안정자금을 도입하면서 이를 ‘최저임금 해결사’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안정자금은 고용이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혜 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도 기여하지 못했다. 노동연이 지난해 안정자금 신청 사업체 3016곳을 대상으로 한 표본 조사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평균 근로자 수는 2017년 5.14명에서 지난해 5.07명으로 1.36% 줄었다. 같은 기간 안정자금 미신청 업체의 근로자 수 감소 폭보다는 작았지만, 정책 효과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정부 지원에도 수혜 업체의 근로자 수가 줄어든 것은 안정자금의 엉성한 지원 요건 탓이 컸다. 정부는 안정자금 지원 조건의 하나로 ‘고용 유지’를 걸고 있다. 가령 5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2명은 월급이 220만원이고 1명은 190만원(안정자금 지원 대상자)이라면 220만원을 받는 2명을 해고해도 안정자금을 지원받는 데 문제가 없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가구 제조업체 H사는 지난해 20명의 직원 중 3명을 줄였고, 올해 4명을 추가로 내보낼 계획이다. 최저임금만 지급해도 되는 외국인 근로자는 남기고 월급이 그보다 많은 젊은 내국인 근로자를 내보냈다. H사 사장 박모씨는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어서 오래 일해 월급을 조금 더 받던 사람들 위주로 감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안정자금 신청 꺼리는 사업주들
영세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 가입 등 까다로운 지원 조건을 그대로 두면 실효성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음식점·편의점·PC방 등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때문에 안정자금 신청을 꺼린다. 사업주가 고용보험료의 절반(근로자 임금의 0.65%)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직원 채용 사실이 드러나 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료 등도 잇따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연 조사에서도 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은 가장 큰 사유(32.9%)는 ‘사업주가 원하지 않아서’였다.
투잡(two job)을 뛰는 직장인, 학자금을 대출받는 학생, 복지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 등 근로자 측에서 소득 노출을 꺼려 가입을 피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배모씨는 “아주머니 3명을 쓰고 있는데 이분들은 모두 현금으로 월급을 달라고 한다”며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고용보험에 들게 했다간 다들 그만둘지 모른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안정자금 신청 사업체의 임금 인상률이 미신청 업체보다 낮은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전체의 40~100% 미만인 업체의 경우 지난해 시간당 급여 인상률은 안정자금 신청 업체(6.0%)보다 미신청 업체(6.9%)가 오히려 높았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세금 퍼주기’식 일자리 정책이 오히려 고용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덜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투입한 2조5137억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지원을 받은 업체의 근로자 수가 오히려 감소한 것은 물론 이들의 근로시간도 줄어든 것으로조사됐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3일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한국노동연구원의 ‘저임금 노동시장 지원 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은 사업체의 평균 근로자 수(작년 9월 기준)는 5.07명으로 전년보다 1.36% 감소했다. 월평균 근로시간(상용직)은 164.6시간으로 4% 줄었다. 임시·일용직의 근로시간은 87.4시간으로 무려 14.5% 감소했고, 그 결과 이들의 월평균 급여도 줄어들었다.
일자리안정자금이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고용 유지’에 기여할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연구원은 정부가 지난해 64만 개 업체에 지원한 일자리안정자금의 정책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3016개 수혜 기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했다.
정부는 올해에도 2조8188억원의 예산을 일자리안정자금으로 쓸 계획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3조원 미만의 자금으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두 자릿수가 넘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부터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부담 덜어줄 해결사라더니…일자리 되레 줄인 '不안정자금'
작년 8월부터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이하 안정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건자재 유통업체 C사는 얼마 전 상근근로자 8명 중 3명을 줄였다. 안정자금을 받는 도중 직원을 해고하면 지원이 끊기지만, 지원 대상(월 보수 210만원 미만)이 아닌 직원을 내보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사장 양모씨는 “10년 넘게 같이 일한 직원을 자르는 게 쉬운 일이었겠느냐”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급격히 늘어난 인건비 탓에 회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의 부메랑 효과
정부가 ‘일자리 안정’ 명목으로 지난해 2조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퍼붓고도 ‘고용 감소’를 막지 못한 것은 비효율적인 자금 집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책 연구소인 한국노동연구원도 “안정자금 지원으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
안정자금은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월급 210만원(최저임금의 120%) 미만 근로자에게 월 최대 15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5만여 개 사업장에서 264만 명가량이 지원금을 받았다. 1인당 평균 95만원 꼴이다. 정부는 작년 초 안정자금을 도입하면서 이를 ‘최저임금 해결사’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안정자금은 고용이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혜 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도 기여하지 못했다. 노동연이 지난해 안정자금 신청 사업체 3016곳을 대상으로 한 표본 조사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평균 근로자 수는 2017년 5.14명에서 지난해 5.07명으로 1.36% 줄었다. 같은 기간 안정자금 미신청 업체의 근로자 수 감소 폭보다는 작았지만, 정책 효과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정부 지원에도 수혜 업체의 근로자 수가 줄어든 것은 안정자금의 엉성한 지원 요건 탓이 컸다. 정부는 안정자금 지원 조건의 하나로 ‘고용 유지’를 걸고 있다. 가령 5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2명은 월급이 220만원이고 1명은 190만원(안정자금 지원 대상자)이라면 220만원을 받는 2명을 해고해도 안정자금을 지원받는 데 문제가 없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가구 제조업체 H사는 지난해 20명의 직원 중 3명을 줄였고, 올해 4명을 추가로 내보낼 계획이다. 최저임금만 지급해도 되는 외국인 근로자는 남기고 월급이 그보다 많은 젊은 내국인 근로자를 내보냈다. H사 사장 박모씨는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어서 오래 일해 월급을 조금 더 받던 사람들 위주로 감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안정자금 신청 꺼리는 사업주들
영세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 가입 등 까다로운 지원 조건을 그대로 두면 실효성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음식점·편의점·PC방 등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때문에 안정자금 신청을 꺼린다. 사업주가 고용보험료의 절반(근로자 임금의 0.65%)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하면 직원 채용 사실이 드러나 국민연금·건강보험·산재보험료 등도 잇따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연 조사에서도 안정자금을 신청하지 않은 가장 큰 사유(32.9%)는 ‘사업주가 원하지 않아서’였다.
투잡(two job)을 뛰는 직장인, 학자금을 대출받는 학생, 복지 혜택을 받는 저소득층 등 근로자 측에서 소득 노출을 꺼려 가입을 피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배모씨는 “아주머니 3명을 쓰고 있는데 이분들은 모두 현금으로 월급을 달라고 한다”며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고용보험에 들게 했다간 다들 그만둘지 모른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안정자금 신청 사업체의 임금 인상률이 미신청 업체보다 낮은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전체의 40~100% 미만인 업체의 경우 지난해 시간당 급여 인상률은 안정자금 신청 업체(6.0%)보다 미신청 업체(6.9%)가 오히려 높았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세금 퍼주기’식 일자리 정책이 오히려 고용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