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선 합법, 한국선 불법…원정치료 떠나는 癌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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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세포 치료 등 받으려고
日서만 年 2000억 넘게 써
日서만 年 2000억 넘게 써
규제 등에 막혀 국내에선 금지된 치료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말기 암 환자가 늘고 있다. 환자 몸에서 채취한 면역세포 등을 배양한 뒤 다시 넣어주는 세포 치료가 국내에선 불법이지만 일본 등 해외에선 허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료비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해 환자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국내 암 환자는 한 해 1만~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일본에서 받는 각종 치료비용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국내 암 환자들이 일본에서 쓰는 치료비만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에선 파악하고 있다. 바이오기업 이뮤니스바이오 관계자는 “일본 클리닉을 통해 한국 환자 등을 대상으로 NK세포 치료제 ‘MYJ1633’ 시술을 하고 있다”며 “한 번 치료에 4000만원 이상 들지만 갈수록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가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신경내분비종양을 치료하는 방사선미사일 치료가 한국에선 금지됐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허용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세포 치료와 핵의학 치료는 모두 국내 의료 기술로도 가능한 것들이다. 의료법 등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규제 장벽이 높아 암 환자들이 국내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독일을 찾는 환자도 많다. 환자 1인당 진료비만 1억~2억원 정도 든다. 김영인 국제성모병원장은 “국내 환자가 해외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현지 에이전시 비용 등이 들어 한국에서 치료받을 때보다 훨씬 비싸다”며 “한국도 암 환자가 자가세포를 활용한 치료는 자유롭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세포치료 받으러…4000만원 들여 일본 가는 癌환자들
폐암 환자 박종환 씨(69·가명)는 이뮤니스바이오에서 개발한 NK세포치료제 ‘MYJ1633’ 주사를 맞기 위해 지난달 말 일본 도쿄의 니지하시클리닉을 다녀왔다. 혈액을 60㏄ 정도 뽑아 암세포를 잡아먹는 면역세포인 NK세포를 배양한 뒤 20억 개 넘는 세포를 넣어주는 치료다. 일본 의료기관을 찾아 피를 뽑고 2주 뒤 다시 병원에 가면 주사를 맞을 수 있다. 회당 치료비는 800만원으로, 이런 과정을 다섯 번 거쳐야 한다. 한국을 오가는 항공비, 현지 체류비 등을 포함하면 40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 불편한 몸으로 비행기에 오르는 것도 고역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박씨는 2주마다 일본을 찾고 있다. 황성환 이뮤니스바이오 대표는 “MYJ1633으로 치료받기 위해 매달 10명 이상의 국내 암 환자가 일본을 찾고 있다”며 “국내에서 치료받으면 치료비만 3분의 1~2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 병원과 손잡는 국내 바이오 기업
일본 의료기관에서 세포 치료를 시작하는 바이오 회사가 늘고 있다. 가장 먼저 진료를 시작한 곳은 차바이오텍의 도쿄셀클리닉이다. 이곳에서 암 환자 등에게 줄기세포를 배양해 주입하는 치료를 한다. 네이처셀은 후쿠오카의 트리니티클리닉, 엔케이맥스는 도쿄와 후쿠오카의 세렌클리닉과 각각 손잡고 환자 치료에 NK세포, T세포 등 면역세포를 활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자에게 직접 치료제를 쓰면서 효과를 확인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데다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일본 의료기관과 손잡는 국내 업체는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일본 진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2014년 일본에서 시행된 재생의료법 때문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개발한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일본 세포치료 시장은 전환점을 맞았다. 재생의료법이 시행되면서 위험도가 낮은 세포치료는 의약품 허가를 받지 않아도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다. 세포치료기관은 일본 후생성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규제를 풀자 해외 바이오 기업이 일본으로 몰렸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은 임상 1~3상을 거쳐 의약품으로 인정받아야 치료에 쓸 수 있다. 재생의료 규제를 줄이는 첨단재생의료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이마저도 임상 3상을 완화해주는 수준이다. 의사 재량껏 진료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반쪽짜리 법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영인 국제성모병원장(신경과 전문의)은 “일본은 면역세포치료에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와 육성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며 “국내는 기술이나 역량이 충분하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법 있는데 국내선 불법이래요”
국내 의료기관은 정해진 치료만 할 수 있다. 병원에서 쓰는 약은 물론 의료 행위까지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열거돼 있기 때문이다. 말기 암 환자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규정과 달리 여러 약을 섞어 쓰거나 의료기술로 등재되지 않은 새 치료를 한 뒤 환자에게 돈을 받으면 모두 불법이다. 적발되면 치료한 의사나 병원이 진료비를 모두 토해내야 한다. 임상현장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인정된 기술만 의료기술로 인정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빠르게 바뀌는 의료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의사들이 말기 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라고 확인도장을 찍는 것뿐”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외국으로 나가는 암 환자가 증가하면서 갈등도 늘고 있다. 국내 유명 암 환자 커뮤니티에는 일본 암 클리닉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에이전시가 비용을 지나치게 부풀려 받거나 에이전시 없이 찾는 암 환자는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중입자 치료를 위해 환자들이 많이 찾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은 지난해 홈페이지에 “중입자 치료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을 찾았다가 사망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며 “치료를 결정하기 전 한국 의료진과 충분히 의논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에만 국내 암 환자 10여 명이 독일에서 암 치료를 받으려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학병원의 종양내과 교수는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를 하는 일본 의료기관 중에는 정해진 용량을 다 주입하지 않거나 부작용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도 많다”며 “의사 자율성을 제한하는 국내 의료 시스템이 환자를 해외로 내모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국내 암 환자는 한 해 1만~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일본에서 받는 각종 치료비용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국내 암 환자들이 일본에서 쓰는 치료비만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에선 파악하고 있다. 바이오기업 이뮤니스바이오 관계자는 “일본 클리닉을 통해 한국 환자 등을 대상으로 NK세포 치료제 ‘MYJ1633’ 시술을 하고 있다”며 “한 번 치료에 4000만원 이상 들지만 갈수록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가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신경내분비종양을 치료하는 방사선미사일 치료가 한국에선 금지됐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허용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세포 치료와 핵의학 치료는 모두 국내 의료 기술로도 가능한 것들이다. 의료법 등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규제 장벽이 높아 암 환자들이 국내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독일을 찾는 환자도 많다. 환자 1인당 진료비만 1억~2억원 정도 든다. 김영인 국제성모병원장은 “국내 환자가 해외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현지 에이전시 비용 등이 들어 한국에서 치료받을 때보다 훨씬 비싸다”며 “한국도 암 환자가 자가세포를 활용한 치료는 자유롭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세포치료 받으러…4000만원 들여 일본 가는 癌환자들
폐암 환자 박종환 씨(69·가명)는 이뮤니스바이오에서 개발한 NK세포치료제 ‘MYJ1633’ 주사를 맞기 위해 지난달 말 일본 도쿄의 니지하시클리닉을 다녀왔다. 혈액을 60㏄ 정도 뽑아 암세포를 잡아먹는 면역세포인 NK세포를 배양한 뒤 20억 개 넘는 세포를 넣어주는 치료다. 일본 의료기관을 찾아 피를 뽑고 2주 뒤 다시 병원에 가면 주사를 맞을 수 있다. 회당 치료비는 800만원으로, 이런 과정을 다섯 번 거쳐야 한다. 한국을 오가는 항공비, 현지 체류비 등을 포함하면 4000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 불편한 몸으로 비행기에 오르는 것도 고역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박씨는 2주마다 일본을 찾고 있다. 황성환 이뮤니스바이오 대표는 “MYJ1633으로 치료받기 위해 매달 10명 이상의 국내 암 환자가 일본을 찾고 있다”며 “국내에서 치료받으면 치료비만 3분의 1~2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 병원과 손잡는 국내 바이오 기업
일본 의료기관에서 세포 치료를 시작하는 바이오 회사가 늘고 있다. 가장 먼저 진료를 시작한 곳은 차바이오텍의 도쿄셀클리닉이다. 이곳에서 암 환자 등에게 줄기세포를 배양해 주입하는 치료를 한다. 네이처셀은 후쿠오카의 트리니티클리닉, 엔케이맥스는 도쿄와 후쿠오카의 세렌클리닉과 각각 손잡고 환자 치료에 NK세포, T세포 등 면역세포를 활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자에게 직접 치료제를 쓰면서 효과를 확인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데다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일본 의료기관과 손잡는 국내 업체는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일본 진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2014년 일본에서 시행된 재생의료법 때문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개발한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며 일본 세포치료 시장은 전환점을 맞았다. 재생의료법이 시행되면서 위험도가 낮은 세포치료는 의약품 허가를 받지 않아도 환자 치료에 쓸 수 있다. 세포치료기관은 일본 후생성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규제를 풀자 해외 바이오 기업이 일본으로 몰렸다. 환자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은 임상 1~3상을 거쳐 의약품으로 인정받아야 치료에 쓸 수 있다. 재생의료 규제를 줄이는 첨단재생의료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이마저도 임상 3상을 완화해주는 수준이다. 의사 재량껏 진료하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반쪽짜리 법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영인 국제성모병원장(신경과 전문의)은 “일본은 면역세포치료에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와 육성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며 “국내는 기술이나 역량이 충분하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법 있는데 국내선 불법이래요”
국내 의료기관은 정해진 치료만 할 수 있다. 병원에서 쓰는 약은 물론 의료 행위까지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열거돼 있기 때문이다. 말기 암 환자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규정과 달리 여러 약을 섞어 쓰거나 의료기술로 등재되지 않은 새 치료를 한 뒤 환자에게 돈을 받으면 모두 불법이다. 적발되면 치료한 의사나 병원이 진료비를 모두 토해내야 한다. 임상현장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인정된 기술만 의료기술로 인정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빠르게 바뀌는 의료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많다. 의사들이 말기 암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국내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라고 확인도장을 찍는 것뿐”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외국으로 나가는 암 환자가 증가하면서 갈등도 늘고 있다. 국내 유명 암 환자 커뮤니티에는 일본 암 클리닉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에이전시가 비용을 지나치게 부풀려 받거나 에이전시 없이 찾는 암 환자는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중입자 치료를 위해 환자들이 많이 찾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은 지난해 홈페이지에 “중입자 치료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을 찾았다가 사망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며 “치료를 결정하기 전 한국 의료진과 충분히 의논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에만 국내 암 환자 10여 명이 독일에서 암 치료를 받으려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학병원의 종양내과 교수는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를 하는 일본 의료기관 중에는 정해진 용량을 다 주입하지 않거나 부작용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도 많다”며 “의사 자율성을 제한하는 국내 의료 시스템이 환자를 해외로 내모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