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법치주의에 대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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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사법부는 법치주의 중요 보루
미국서도 정치권력의 위협은 상존
법치주의 믿음이 민주주의 발전 기초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미국서도 정치권력의 위협은 상존
법치주의 믿음이 민주주의 발전 기초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법치주의(rule of law)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원칙이다. 누구나 학교에서 법치주의를 배웠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수시로 듣고 말한다.
그런데 법치를 단순히 법을 활용한 통치 정도로 이해하는 정치인을 의외로 자주 보게 된다. 의법치국(依法治國)을 말하는 중국 지도부는 솔직하기까지 하다. 준법투쟁이라는 용어도 자신들의 투쟁 목적에 법을 이용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생각들에는 법치주의를 수단이나 겉치레 정도로 얕잡아보고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에 봉사하는 법률가들이 이른바 ‘법률기술자’라 하겠다.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면 그 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 해석과 적용에 국회가 아닌 다른 기관이 사전적 의미 외의 요소를 고려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생각이 한때 지배적이었다. 당연히 법관에 의한 법 해석을 최소화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념에 더 충실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법이라는 형식만 갖추면 어떤 내용도 주권자의 뜻이라고 이해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결과적으로 법을 빙자한 불법을 자초했다. 그런 생각이 나치즘을 탄생시켰고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인권 유린과 대학살을 불러왔으며 세계대전의 비극을 초래했다.
이제는 입법 과정의 민주적 정당성만이 아니라 그 실질적 내용의 정당성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한다. 법의 실질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여러 방안도 강구됐다.
국제민간기구 ‘월드 저스티스 프로젝트’는 법치주의의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법에 의해 조직되고 책임지는 기제가 확보될 것, 법이 명확하고 공개되며 안정적이고 정당할 것, 법이 제정·집행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것, 사법부가 공정하고 접근 가능할 것 등이다. 종국적으로는 독립된 사법부의 존재가 법치주의를 담보하는 중요한 제도적 역할을 한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알려진 제임스 매디슨은 230년 전 연방주의자 논설 62호에서 “만약 법이 지나치게 방대해서 읽어볼 수 없거나, 앞뒤가 맞지 않아 이해할 수 없거나, 수시로 폐지 변경돼서 오늘은 법이 무엇인지 알아도 내일은 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국민이 대표를 통해 법을 제정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설파했다. 법이 방대할뿐더러 전문 용어로 채워져 있고, 수시로 개정되며,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는 현실을 반성하게 된다.
법을 이상주의적으로 규정해 대부분의 사람이 법에 저촉되게 한 뒤 권력자가 임의로 대상자를 골라 법의 이름으로 규제한다면 이것은 법치주의를 빙자한 독재에 불과하다. 설령 재판은 엄밀하고 공정하게 하더라도 그 재판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거나 편의적으로 집행되기도 하고 면제되기도 한다면 법치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된다.
과거 국회에서 벌어진 연좌농성과 관련해 특정 정당에 소속된 사람들만 선별 기소된 적이 있었다. 법원은 자의적인 공소권 남용으로 보고 공소를 기각했는데 해당 판사 개인과 소속 법원에 여론을 등에 업은 비난이 쇄도했다.
독립된 강력한 사법부를 출범시켰으며 세계적인 성공 모델로 칭찬받는 미국 민주주의하에서도 사법의 독립을 둘러싼 위협과 투쟁이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정치권력의 속성은 자신의 정치적 프로그램을 달성하기 위해 영향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공약을 내걸었고,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는 정치권력으로서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사법의 독립을 위협하는 것이 정치적 목적 달성에 오히려 불리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고하지 않다면 사법의 독립에 대한 정치권력의 위협은 상존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이데올로기며 일종의 종교에 비유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공유할 때 종교는 현실적 힘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의 이름을 써내려갔던 그 갈망과 열정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면 법치주의를 향한 공감과 믿음의 확산이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다. 법치주의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빌미로 세속적인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고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에 대해 진정한 신념을 지니고 그 믿음을 사회에 전파해야 한다.
그런데 법치를 단순히 법을 활용한 통치 정도로 이해하는 정치인을 의외로 자주 보게 된다. 의법치국(依法治國)을 말하는 중국 지도부는 솔직하기까지 하다. 준법투쟁이라는 용어도 자신들의 투쟁 목적에 법을 이용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생각들에는 법치주의를 수단이나 겉치레 정도로 얕잡아보고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에 봉사하는 법률가들이 이른바 ‘법률기술자’라 하겠다.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면 그 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 해석과 적용에 국회가 아닌 다른 기관이 사전적 의미 외의 요소를 고려하거나 반영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생각이 한때 지배적이었다. 당연히 법관에 의한 법 해석을 최소화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념에 더 충실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법이라는 형식만 갖추면 어떤 내용도 주권자의 뜻이라고 이해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결과적으로 법을 빙자한 불법을 자초했다. 그런 생각이 나치즘을 탄생시켰고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인권 유린과 대학살을 불러왔으며 세계대전의 비극을 초래했다.
이제는 입법 과정의 민주적 정당성만이 아니라 그 실질적 내용의 정당성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에 모두 동의한다. 법의 실질이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여러 방안도 강구됐다.
국제민간기구 ‘월드 저스티스 프로젝트’는 법치주의의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법에 의해 조직되고 책임지는 기제가 확보될 것, 법이 명확하고 공개되며 안정적이고 정당할 것, 법이 제정·집행되는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것, 사법부가 공정하고 접근 가능할 것 등이다. 종국적으로는 독립된 사법부의 존재가 법치주의를 담보하는 중요한 제도적 역할을 한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알려진 제임스 매디슨은 230년 전 연방주의자 논설 62호에서 “만약 법이 지나치게 방대해서 읽어볼 수 없거나, 앞뒤가 맞지 않아 이해할 수 없거나, 수시로 폐지 변경돼서 오늘은 법이 무엇인지 알아도 내일은 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국민이 대표를 통해 법을 제정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설파했다. 법이 방대할뿐더러 전문 용어로 채워져 있고, 수시로 개정되며,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는 현실을 반성하게 된다.
법을 이상주의적으로 규정해 대부분의 사람이 법에 저촉되게 한 뒤 권력자가 임의로 대상자를 골라 법의 이름으로 규제한다면 이것은 법치주의를 빙자한 독재에 불과하다. 설령 재판은 엄밀하고 공정하게 하더라도 그 재판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거나 편의적으로 집행되기도 하고 면제되기도 한다면 법치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된다.
과거 국회에서 벌어진 연좌농성과 관련해 특정 정당에 소속된 사람들만 선별 기소된 적이 있었다. 법원은 자의적인 공소권 남용으로 보고 공소를 기각했는데 해당 판사 개인과 소속 법원에 여론을 등에 업은 비난이 쇄도했다.
독립된 강력한 사법부를 출범시켰으며 세계적인 성공 모델로 칭찬받는 미국 민주주의하에서도 사법의 독립을 둘러싼 위협과 투쟁이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정치권력의 속성은 자신의 정치적 프로그램을 달성하기 위해 영향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공약을 내걸었고,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는 정치권력으로서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사법의 독립을 위협하는 것이 정치적 목적 달성에 오히려 불리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고하지 않다면 사법의 독립에 대한 정치권력의 위협은 상존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이데올로기며 일종의 종교에 비유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공유할 때 종교는 현실적 힘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의 이름을 써내려갔던 그 갈망과 열정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면 법치주의를 향한 공감과 믿음의 확산이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다. 법치주의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빌미로 세속적인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고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실질적 법치주의에 대해 진정한 신념을 지니고 그 믿음을 사회에 전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