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느린 속도, 오랜 잔상의 '라스트 미션'
2011년 10월 21일 아이오와 번호판을 단 링컨 픽업트럭은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94번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곳엔 10명 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이 잠복해 ‘타타’란 애칭으로 불리는 마약 운반책을 쫓고 있었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세계 최대 마약밀매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 수하에서 일하며 한 번에 200~300㎏의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지의 인물. 확인된 것은 애칭과 차종뿐인 그를 잡을 마지막 기회였다.

마침내 고속도로를 차단한 DEA 특수요원과 주립 경찰의 삼엄한 포위 속에 타타로 특정된 용의자가 링컨 픽업트럭에서 천천히 내렸다. 경찰관에게 내민 면허증에 적힌 그의 이름은 레오 샤프. 1924년 태어난 87세의 노인은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으며 전과는 없었다. 검거 당시 그의 트렁크에는 300㎏의 코카인이 실려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모두 실화다. 최고령 마약 운반책으로 기록된 샤프의 사건은 2014년 6월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장문의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그랜 토리노’의 각본가 닉 솅크의 눈에 띄었고, 그는 기사를 원작으로 삼은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랜 토리노’를 함께 작업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기로 결정하며 영화화됐다.

영어 원제는 마약 운반책을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는 ‘더 뮬(The Mule)’이지만, 한국에서는 ‘라스트 미션’이란 제목으로 상영 중인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많은 부분 그대로 담아냈다. 영화 속 주인공 ‘얼’은 백합 원예가로 등장하는데 실제 샤프 역시 수차례 상을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백합 원예가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무공훈장까지 받았던 그는 왜 느닷없이 마약 운반책으로 암약하게 된 것일까.

샤프는 무려 10년간 한 차례도 걸리지 않은 채 멕시코 근방에서 디트로이트까지 홀로 미국을 횡단하며 마약을 실어 날랐다. ㎏당 1000달러의 배송료를 받았던 그는 잡히기 직전인 2010년에만 1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가 왜 마약 조직 세계의 전설로 불렸는지 짐작할 만하다. 베테랑 DEA 특수요원들 역시 스페인어로 할아버지를 뜻하는 타타란 애칭의 그가 정말 할아버지일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 ‘라스트 미션’의 주인공 얼은 하루만 지나면 져버리는 백합의 아름다움을 좇아 일생을 바친 남자다. 그는 백합을 돌보느라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인터넷에 밀려 원예사업이 망하고, 할 일도 갈 곳도 잃은 그는 가족을 찾지만 그들에게 얼은 오래전 사라진 존재일 뿐이다. 솔직히 얼은 이기적이고 무례한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 꼰대 할아버지 같을 때도 많다. 하지만 한편 그는 마약을 운반하는 와중에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꽃할배고, 마약 조직원에게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라”는 조언을 건네는 지혜를 갖춘 올드맨이기도 하다.

‘라스트 미션’은 90세를 맞이한 이스트우드 감독의 요란하지 않은 차림새가 매력적인 영화다. 요새 영화 같지 않은 느린 속도는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지고 잔상은 생각지 못하게 오래간다. 아흔 살의 거장 감독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