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 공무원들 몸 사리느라 지지부진"
“어떻게든 규제를 유지하고 싶은 공무원들 입장에서 규제 샌드박스는 좋은 핑곗거리입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4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코리아리더스 포럼에서 규제 샌드박스의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정부 부처에 규제 완화를 요구하면 샌드박스를 이용하란 답이 돌아온다”며 “샌드박스가 규제 완화의 회피 창구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규제 샌드박스를 뛰어넘자’였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이 진행하고 이 본부장이 기조연설을 맡았다. 패널로는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송희경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강영철 한국규제학회 부회장 등이 참여했다.

규제 샌드박스가 개별 기업의 규제 애로를 건별로 심사하는 ‘관문 방식’이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본부장은 “한국은 대대적인 ‘규제 벌초’가 필요한 나라인데 잡초 한두 개를 손으로 뽑고 있다”며 “미국처럼 일단 사업을 하게 허용하고 문제가 있는지를 공무원이 입증하는 쪽으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시행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실증특례나 임시허가를 받은 기업은 13곳뿐이다.

패널들도 공무원 관료주의를 규제 샌드박스의 주적으로 꼽았다. 최 의원은 “규제 하나가 없어지면 의원 입법으로 여러 규제를 신설하는 게 정부 조직의 특징”이라며 “의원 입법도 까다로운 규제 영향 평가를 거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규제 샌드박스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 업무를 담당하는 8개 부처 담당 과장들의 평균 임기가 1년 남짓에 불과하다”며 “해당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임기 내에 문제를 안 만들려 애쓰다 보니 속도감 있는 업무 처리가 힘들다”고 전했다.

강 부회장은 규제 개선을 주요 부처 장관의 업무 우선순위 중 제일 앞에 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 공무원은 섣불리 규제를 풀면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며 “문제가 터졌을 때 100% 장관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관료사회의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