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5G 1호 가입자들. 엑소(EXO)의 백현(왼쪽부터), 전 피겨 선수 김연아, 수영선수 윤성혁, 장기 고객 박재원 씨, e스포츠 선수 페이커, 엑소 카이.  /SKT 제공
SK텔레콤의 5G 1호 가입자들. 엑소(EXO)의 백현(왼쪽부터), 전 피겨 선수 김연아, 수영선수 윤성혁, 장기 고객 박재원 씨, e스포츠 선수 페이커, 엑소 카이. /SKT 제공
한국시간으로 지난 3일 밤 11시55분. 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은 트위터에 ‘속보’란 제목으로 “시카고와 미니애폴리스 고객들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5세대(5G) 이동통신망으로 서비스하는 5G 스마트폰을 갖게 됐다”고 알렸다. 세계 최초로 5G 스마트폰을 상용화했다는 자신감에 찬 선언이었다.

이는 태평양 건너 한국의 일을 전혀 모르고 올린 글이었다. 약 1시간 앞서 한국 통신업체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1호 5G 스마트폰 개통 행사를 열었다. 한국이 ‘세계 최초’ 5G 스마트폰 상용화 타이틀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KT의 5G 1호 가입자 이지은 씨(가운데)가 3일 대구 동성로 KT 직영점에서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T  제공
KT의 5G 1호 가입자 이지은 씨(가운데)가 3일 대구 동성로 KT 직영점에서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T 제공
55분 차이로 갈린 ‘세계 최초’

3일 오후 통신업계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 버라이즌이 당초 11일로 예정된 5G 스마트폰 상용화 시기를 3일로 앞당길 수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다.

5일 스마트폰 개통 행사를 준비하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업계, 휴대폰 제조사는 이날 오후 5시께 정부과천청사와 서울 시내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맥없이 뺏길 수 없다는 의견이 모아지자 오후 8시 이후 바로 개통식 준비에 들어갔다.

통신사들은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씨 등 사전예약 가입자 가운데 1호 개통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나섰다. 5G 가입자를 등록할 전산시스템도 다급하게 가동했다. 삼성전자는 통신 3사에 보낼 ‘갤럭시S10 5G’ 스마트폰을 수배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개통식이 열린 시간은 오후 11시. 버라이즌의 트위터를 기준으로 볼 때 55분 차이로 한국이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통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 정보통신 최강국임을 입증했다”며 “산·학·연 모든 관계자의 노력과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LG유플러스의 5G 첫 번째 가입자인 모델 겸 방송인 김민영 씨(가운데)와 남편인 카레이서 서주원 씨(왼쪽).  /LG유플러스  제공
LG유플러스의 5G 첫 번째 가입자인 모델 겸 방송인 김민영 씨(가운데)와 남편인 카레이서 서주원 씨(왼쪽). /LG유플러스 제공
어떻게 인정받을까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 5G 스마트폰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등 국제단체와 해외 기업들로부터 정식 인정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1호 가입자가 나오긴 했지만 한국에서 일반인은 5일에야 5G 스마트폰을 개통할 수 있다.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야간·휴일 개통이 금지돼 왔다는 점에서 밤 11시 개통은 ‘편법’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

미국 버라이즌도 약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5G 전용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라이즌이 3일 판매를 시작한 제품은 모토로라의 ‘모토 Z3’다. 4세대 이동통신(LTE) 모델에 5G 접속 모듈을 끼워 사용하는 방식이다. 5G 서비스 지역도 시카고와 미니애폴리스 등 미국 동북부 지역에 국한됐다.

국내 통신업체들은 지난해 12월 초 고작 3000대 정도 물량의 5G 모바일 라우터를 내놓으며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선언해 지적받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최초 타이틀에 집착한 데는 과기정통부의 조급증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유 장관은 그동안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주요 성과로 삼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버라이즌의 5G 상용화 방식은 국내와 비교해 완성도가 떨어지는데도 정부가 한밤에 기습 개통행사를 열게 하면서 ‘세계 최초’ 논란을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55분 앞서 세계 첫 5G 서비스…한밤 첩보전 방불케 한 '韓·美 개통戰'
중국, 일본도 5G 경쟁

그럼에도 미국과 한국의 통신업체들이 5G 스마트폰 세계 최초 상용화를 놓고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펼친 것은 5G가 갖는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5G 선점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상징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양국 모두 수차례 상용화 일정을 앞당기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5G 선점 경쟁은 미래기술 패권전쟁으로 여겨지는 미·중 간 통상전쟁에서도 핵심 사안이다. 미 정부는 서방국가들이 화웨이 5G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안보위협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의 자국 내 5G 사업 참여를 금지했다. 일본이 조만간 뒤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5G, 심지어 6G 기술을 원한다”며 5G 상용화를 독려하기도 했다.

중국도 5G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상하이시 정부는 지난달 30일 훙커우구에서 고화질 5G 화상통화망 구축 행사를 열었다. 상하이시는 올해 말까지 상하이 훙차오역에 5G망도 구축할 계획이다. 선전시 지하철 당국은 5G 기술을 이용해 안면인식으로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 통신업체들은 주요 도시별 테스트를 거쳐 2020년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5G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할 계획이다. 일본 1위 통신사인 NTT도코모는 올림픽 때 5G망을 활용한 실감 영상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 LTE 기술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유럽은 5G 도입에 다소 소극적인 분위기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