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IT] 구미 간 삼성맨은 퇴사, 포항공대 졸업생은 강남·판교 와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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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수도권 규제 뚫고 용인에 반도체클러스터
"비용절감보다 인재확보·혁신환경" 패러다임 바뀌었다
"비용절감보다 인재확보·혁신환경" 패러다임 바뀌었다
수도권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한 A씨는 몇 년 뒤 퇴사하고 현재 해외 아마존웹서비스(AWS)로 옮겼다. 그는 당초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희망했지만 구미사업장에 배치됐다. A씨는 “구미로 발령 나자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입지가 고급인력 확보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A씨는 소수 예외사례가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올 초 지역사회 반대에도 구미1사업장 네트워크사업부 대부분의 수원 이전을 결정했다. 더 이상 제조 기능과 연구개발(R&D) 조직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게 삼성의 판단이었다.
지난달 27일 최종 승인 받은 SK하이닉스의 용인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는 “부가가치 188조원”(홍남기 경제부총리)짜리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수도권 산업단지 총량규제를 풀었다. 용인은 ‘마지노선’이었단 평가다. 수도권 입지를 고수한 것은 반도체 제조·설계인력 확보를 위해서였다. SK하이닉스는 “국내외 우수인재가 선호하는 수도권에 위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패러다임이 180도 바뀌고 있다. 비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우선순위는 핵심인력 확보다. 인재들은 수도권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고비용을 감수하고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판교로 대표되는 ‘IT 집적지’에 몰려드는 이유다.
입지 문제는 비용과 직결된다. 사실 구미는 SK하이닉스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시 차원에서 부지 10년간 무상임대, 직원 사택 공급 등 파격 조건을 제시했다. 시민들은 겨울철 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SK하이닉스 유치를 기원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수도권 규제를 뚫고 용인으로 갔다.
반도체의 제조업 성격이 옅어지고 지식산업화하는 추세도 영향을 줬다. 2013년 SK하이닉스의 생산직과 기술사무직(R&D직) 비중은 6:4 정도였다. 작년엔 5:5 수준으로 5년 만에 ‘체질’이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반도체 R&D 비용 역시 각각 18조6600억원, 2조895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론적으로는 IT 인프라로 연결돼 어디에 위치하든 문제없고, 따라서 비용이 저렴한 지역을 선호할 것 같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왜일까.
가상화폐(암호화폐) 자산관리 솔루션을 개발한 부스트의 이동주 대표는 강남 역세권에 입주했다. 그는 “두 가지 이유다. 우선 협업하는 업체들이 근처라 만나기에 편하다. 또 출·퇴근이 불편하면 인력 영입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특히 IT 기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경우 강남·판교에 더욱 몰리고 있다. 보증금까지 없앤 패스트파이브 등 공유오피스가 대거 들어선 덕분이다. 이들 지역의 ‘입주 장벽’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공유오피스에 입주한 B씨는 “같은 가격으로 변두리에 좀 더 넓은 사무실을 임대하는 것보다 낫다. 접근성과 이미지가 좋고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혁신 환경은 대도시적 환경이다. 〈지방도시 살생부〉 저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젊은 인재들이 자유롭게 만나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로 얘기하다가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오곤 한다. 원격으로는 그런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일수록 아이디어가 중요하므로 기업은 대도시의 비싼 임대료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같은 ‘플랫폼 효과’ 때문에 IT 인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한경닷컴이 5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에 의뢰해 집계한 ‘지역별 반도체 구인공고 건수’(2019년 3월 한 달간 기준)를 보면 시 단위로는 서울(996건), 도 단위로는 경기(1508건)가 가장 많았다. 수도권이 전체(3829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주목 포인트는 그 다음. 광역시도 기준 충남(454건)·충북(342건)이 수도권 바로 뒤에 자리했다. 반면 울산(17건) 부산(12건) 경남(11건) 광주(3건) 전남(2건)은 최하위권에 처졌다. 지역별 산업 특성을 감안해도 ‘수도권과의 거리’가 주요인이라 해석할 수 있다. 수도권 접근성이 인재확보 최우선 조건이란 얘기다. 포스텍(포항공대) 사례는 입지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수 IT 인력을 키워내지만 이들은 R&D든 창업이든 강남이나 판교로 간다. 포스텍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C씨는 “대전 KAIST만 해도 인근에 대덕연구단지 등 나름의 환경이 마련돼 있는데 포항은 인프라가 정말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포스텍에서 30여년 교수생활을 한 서의호 아주대 경영대학장은 “주변에 마땅한 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니 졸업생들이 창업하려 해도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인재확보 문제”라고 말했다. 마강래 교수는 “수도권 규제보다는 지방에 ‘대도시권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봉구/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입지가 고급인력 확보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A씨는 소수 예외사례가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올 초 지역사회 반대에도 구미1사업장 네트워크사업부 대부분의 수원 이전을 결정했다. 더 이상 제조 기능과 연구개발(R&D) 조직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게 삼성의 판단이었다.
지난달 27일 최종 승인 받은 SK하이닉스의 용인행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는 “부가가치 188조원”(홍남기 경제부총리)짜리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수도권 산업단지 총량규제를 풀었다. 용인은 ‘마지노선’이었단 평가다. 수도권 입지를 고수한 것은 반도체 제조·설계인력 확보를 위해서였다. SK하이닉스는 “국내외 우수인재가 선호하는 수도권에 위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패러다임이 180도 바뀌고 있다. 비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우선순위는 핵심인력 확보다. 인재들은 수도권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고비용을 감수하고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판교로 대표되는 ‘IT 집적지’에 몰려드는 이유다.
입지 문제는 비용과 직결된다. 사실 구미는 SK하이닉스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시 차원에서 부지 10년간 무상임대, 직원 사택 공급 등 파격 조건을 제시했다. 시민들은 겨울철 아이스 버킷 챌린지로 SK하이닉스 유치를 기원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수도권 규제를 뚫고 용인으로 갔다.
반도체의 제조업 성격이 옅어지고 지식산업화하는 추세도 영향을 줬다. 2013년 SK하이닉스의 생산직과 기술사무직(R&D직) 비중은 6:4 정도였다. 작년엔 5:5 수준으로 5년 만에 ‘체질’이 바뀌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반도체 R&D 비용 역시 각각 18조6600억원, 2조895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론적으로는 IT 인프라로 연결돼 어디에 위치하든 문제없고, 따라서 비용이 저렴한 지역을 선호할 것 같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왜일까.
가상화폐(암호화폐) 자산관리 솔루션을 개발한 부스트의 이동주 대표는 강남 역세권에 입주했다. 그는 “두 가지 이유다. 우선 협업하는 업체들이 근처라 만나기에 편하다. 또 출·퇴근이 불편하면 인력 영입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특히 IT 기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경우 강남·판교에 더욱 몰리고 있다. 보증금까지 없앤 패스트파이브 등 공유오피스가 대거 들어선 덕분이다. 이들 지역의 ‘입주 장벽’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공유오피스에 입주한 B씨는 “같은 가격으로 변두리에 좀 더 넓은 사무실을 임대하는 것보다 낫다. 접근성과 이미지가 좋고 젊은 인재들이 선호하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혁신 환경은 대도시적 환경이다. 〈지방도시 살생부〉 저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젊은 인재들이 자유롭게 만나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로 얘기하다가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오곤 한다. 원격으로는 그런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일수록 아이디어가 중요하므로 기업은 대도시의 비싼 임대료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같은 ‘플랫폼 효과’ 때문에 IT 인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한경닷컴이 5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에 의뢰해 집계한 ‘지역별 반도체 구인공고 건수’(2019년 3월 한 달간 기준)를 보면 시 단위로는 서울(996건), 도 단위로는 경기(1508건)가 가장 많았다. 수도권이 전체(3829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주목 포인트는 그 다음. 광역시도 기준 충남(454건)·충북(342건)이 수도권 바로 뒤에 자리했다. 반면 울산(17건) 부산(12건) 경남(11건) 광주(3건) 전남(2건)은 최하위권에 처졌다. 지역별 산업 특성을 감안해도 ‘수도권과의 거리’가 주요인이라 해석할 수 있다. 수도권 접근성이 인재확보 최우선 조건이란 얘기다. 포스텍(포항공대) 사례는 입지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수 IT 인력을 키워내지만 이들은 R&D든 창업이든 강남이나 판교로 간다. 포스텍 출신 소프트웨어 개발자 C씨는 “대전 KAIST만 해도 인근에 대덕연구단지 등 나름의 환경이 마련돼 있는데 포항은 인프라가 정말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포스텍에서 30여년 교수생활을 한 서의호 아주대 경영대학장은 “주변에 마땅한 생태계가 갖춰져 있지 않으니 졸업생들이 창업하려 해도 수도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인재확보 문제”라고 말했다. 마강래 교수는 “수도권 규제보다는 지방에 ‘대도시권 생태계’를 조성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봉구/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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