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없애고 결혼식 건너뛰고…" 밀레니얼 세대의 新 결혼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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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왁자지껄
지난달 초 부부가 된 최하나(32)·박정수(38) 씨는 결혼식은 생략한 채 혼인신고만 했다. 결혼기념일은 혼인신고를 한 날로 정했다. 늦은 겨울휴가로 신혼여행을 대체하고, 스튜디오 촬영은 여행지에서 스냅촬영으로 갈음했다. 두 사람은 “우리만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남들을 불러놓고 과시하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며 “결혼식을 준비하며 받는 스트레스도 피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2030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 문화를 새로 쓰고 있다. 처음엔 ‘주례없는 결혼식’이 늘다가 클럽하우스나 근교 웨딩홀에서 가족 및 친지만 부르는 스몰웨딩이 유행하더니 급기야 ‘결혼식 없는 결혼(노웨딩)’까지 등장한 것. 과거 ‘물 떠놓고 결혼했다’는 말이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는 클리셰였을 만큼 ‘노웨딩=빈곤’으로 생각했던 인식이 무색한 풍경이다.
◆이들은 왜 결혼식을 거부하나
다음달 초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강은선 씨(31)는 앞서 결혼한 선배들을 보고 결혼식을 치르지 않기로 예비신랑과 합의했다. 강씨는 “선배들이 하나같이 ‘결혼식이 기쁜 이유는 곧 이 지긋지긋한 식이 끝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파혼에 이르는 사례도 많이 봐서 우리나라 결혼식 문화에 피로감이 컸다”고 말했다.
‘웨딩의 주인공은 신부’라는 공식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여자는 드레스 등 화려한 결혼식을 꿈꾼다는 편견이 싫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혼인신고를 한 김혜원 씨(29)는 그간 숱하게 다닌 결혼식에서 신부를 인형처럼 대하는 걸 보고 진저리를 쳤다. 김씨는 “결혼식은 엄연히 부부 공동의 날인데 신부만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불편했다”며 “혼자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나 자신을 전시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혼식 준비를 통해 양가의 ‘민낯’을 보게 된다는 점도 노웨딩 열풍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1월 결혼식을 올린 정대명(30)·이현정(30) 부부는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가 부모님이 벌인 ‘파워게임’을 떠올리면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정씨는 “합리적인 부모님이었는데 온갖 허례허식을 다 요구하시는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씨 역시 “양가 부모님 의견을 중간에서 전달하며 신랑과 많이 싸웠고, 엄마아빠에게 솔직히 실망도 했다”고 토로했다.
◆스몰·셀프웨딩도 럭셔리하게
결혼식을 치르더라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부부의 은사나 부모님의 지인 등에게 부탁하던 주례는 사실상 사라지는 추세다. 두 사람에게 큰 의미없는 사람을 주례로 세우기보다는 양가 부모님의 편지나 덕담, 친구들의 축사로 대체하는 경향이 강하다. 식장과 청첩장에 부모님 이름은 생략하고 신랑신부 이름만 내세우기도 한다. ‘이 결혼의 주인공은 우리고, 누군가의 아들·딸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독립’이라는 선언이다. 가족·친지만 모시는 스몰웨딩은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발간된 롯데멤버스 ‘트렌드Y 웨딩리포트’에 따르면 평균 하객수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식장으로 호텔 예식장(28.9%), 하우스 웨딩(13.3%)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다. 시청 등 공공시설도 새로운 선택지로 떠올랐다. 식 규모가 작은 스몰웨딩이 더 저렴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호화스럽기로 작정하면 일반 결혼식보다 비용이 더 든다. 규모의 경제를 이룬 웨딩홀 결혼식보다 모든 것을 스스로, 소규모로 준비할 경우 단가가 더 높기 때문이다.
호텔업계도 이런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서울 더플라자 호텔 메이플홀에서는 하객 20명 가량이 참석하는 초소규모 결혼식이 열렸다. 하지만 주례·축가 등 일반 결혼식 절차는 그대로 진행했다. 더플라자 플라워숍 ‘지스텀’에서 꽃장식을 담당했고, 음식·무대 장식 등도 갖췄다. 더플라자 관계자는 “스몰웨딩이어도 구색을 갖춰 식을 올리는 커플이 많아 대형 웨딩보다 하객 1인당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예식 상담을 진행해보면 원래 호텔 예식은 혼주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몰웨딩은 대부분 신랑·신부의 결정이다”고 말했다.
스몰웨딩은 호텔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더플라자 호텔은 2017년부터 20~80명 사이 하객을 초대하는 스몰 웨딩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작은 결혼식 수요가 몰리면서 관련 매출은 2017년 전년 대비 300%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50% 늘었다. 원래 돌잔치가 주로 열리던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30층 연회장에서도 2017년께부터 본격적으로 스몰웨딩이 열리기 시작했다. 호텔 관계자는 “2017년만 해도 호텔 스몰웨딩은 대부분 재혼 예식이었다”면서 “올해는 초혼도 스몰웨딩으로 진행하려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올해 스몰웨딩이 전체 웨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를 처음 넘어섰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JW메리어트 동대문, 포시즌스 호텔 등도 소규모 웨딩 상품을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축의금 어쩌란 말이냐”
다음달 초 결혼을 앞둔 김원호씨(37)는 가족·친지 20여명만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만 하기로 했지만 일단 청첩장은 맞췄다. 회사에서 결혼축하금을 받으려면 청첩장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청첩장 제작 최소 단위가 100장이어서 나머지 80장은 어디다가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결혼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결혼식을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더라”고 전했다.
이는 정부가 제공하는 신혼부부 혜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컨대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대출신청일로부터 3개월 이내 결혼 예정자에게도 혜택을 주지만, 청첩장 또는 예식장 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스몰·노웨딩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청첩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극소량의 제출용 청첩장만 제작하는 업체도 나타났다.
직장인 최태경씨(46)는 최근 같은 팀 후배들이 잇따라 스몰·노웨딩을 치르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축의금 전달 여부를 놓고 40~50대 상사들이 모여 논의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주변에 물어봐도 의견이 반반으로 갈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씨는 “보통 결혼식에 가든 안가든 청첩장을 받으면 축의를 하는 편인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며 “집들이 문화도 사라졌는데 그냥 ‘축하한다’ 한마디로 정리해도 되는지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축의금은 부모 세대에서도 화두다. 스몰·노웨딩을 선언한 자녀들에게 “지금까지 뿌린 축의금을 회수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도 쉽지 않다. 오는 10월 아들이 스몰웨딩을 치르는 김미희씨(57)는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 결혼식에 꼬박꼬박 참석한 데는 내 자식 결혼식을 염두에 둔 것도 있는데 조금 아쉽다”면서도 “(자녀들) 뜻이 워낙 확고한데다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지도 못해 그냥 승낙했다”고 토로했다.
이현진/이수빈 기자 apple@hankyung.com
2030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 문화를 새로 쓰고 있다. 처음엔 ‘주례없는 결혼식’이 늘다가 클럽하우스나 근교 웨딩홀에서 가족 및 친지만 부르는 스몰웨딩이 유행하더니 급기야 ‘결혼식 없는 결혼(노웨딩)’까지 등장한 것. 과거 ‘물 떠놓고 결혼했다’는 말이 어려운 시절을 회상하는 클리셰였을 만큼 ‘노웨딩=빈곤’으로 생각했던 인식이 무색한 풍경이다.
◆이들은 왜 결혼식을 거부하나
다음달 초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강은선 씨(31)는 앞서 결혼한 선배들을 보고 결혼식을 치르지 않기로 예비신랑과 합의했다. 강씨는 “선배들이 하나같이 ‘결혼식이 기쁜 이유는 곧 이 지긋지긋한 식이 끝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파혼에 이르는 사례도 많이 봐서 우리나라 결혼식 문화에 피로감이 컸다”고 말했다.
‘웨딩의 주인공은 신부’라는 공식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여자는 드레스 등 화려한 결혼식을 꿈꾼다는 편견이 싫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혼인신고를 한 김혜원 씨(29)는 그간 숱하게 다닌 결혼식에서 신부를 인형처럼 대하는 걸 보고 진저리를 쳤다. 김씨는 “결혼식은 엄연히 부부 공동의 날인데 신부만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것이 불편했다”며 “혼자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불편한 드레스를 입고 나 자신을 전시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혼식 준비를 통해 양가의 ‘민낯’을 보게 된다는 점도 노웨딩 열풍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1월 결혼식을 올린 정대명(30)·이현정(30) 부부는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가 부모님이 벌인 ‘파워게임’을 떠올리면 아직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정씨는 “합리적인 부모님이었는데 온갖 허례허식을 다 요구하시는 걸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씨 역시 “양가 부모님 의견을 중간에서 전달하며 신랑과 많이 싸웠고, 엄마아빠에게 솔직히 실망도 했다”고 토로했다.
◆스몰·셀프웨딩도 럭셔리하게
결혼식을 치르더라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부부의 은사나 부모님의 지인 등에게 부탁하던 주례는 사실상 사라지는 추세다. 두 사람에게 큰 의미없는 사람을 주례로 세우기보다는 양가 부모님의 편지나 덕담, 친구들의 축사로 대체하는 경향이 강하다. 식장과 청첩장에 부모님 이름은 생략하고 신랑신부 이름만 내세우기도 한다. ‘이 결혼의 주인공은 우리고, 누군가의 아들·딸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독립’이라는 선언이다. 가족·친지만 모시는 스몰웨딩은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발간된 롯데멤버스 ‘트렌드Y 웨딩리포트’에 따르면 평균 하객수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식장으로 호텔 예식장(28.9%), 하우스 웨딩(13.3%)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다. 시청 등 공공시설도 새로운 선택지로 떠올랐다. 식 규모가 작은 스몰웨딩이 더 저렴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호화스럽기로 작정하면 일반 결혼식보다 비용이 더 든다. 규모의 경제를 이룬 웨딩홀 결혼식보다 모든 것을 스스로, 소규모로 준비할 경우 단가가 더 높기 때문이다.
호텔업계도 이런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서울 더플라자 호텔 메이플홀에서는 하객 20명 가량이 참석하는 초소규모 결혼식이 열렸다. 하지만 주례·축가 등 일반 결혼식 절차는 그대로 진행했다. 더플라자 플라워숍 ‘지스텀’에서 꽃장식을 담당했고, 음식·무대 장식 등도 갖췄다. 더플라자 관계자는 “스몰웨딩이어도 구색을 갖춰 식을 올리는 커플이 많아 대형 웨딩보다 하객 1인당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예식 상담을 진행해보면 원래 호텔 예식은 혼주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스몰웨딩은 대부분 신랑·신부의 결정이다”고 말했다.
스몰웨딩은 호텔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더플라자 호텔은 2017년부터 20~80명 사이 하객을 초대하는 스몰 웨딩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작은 결혼식 수요가 몰리면서 관련 매출은 2017년 전년 대비 300%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50% 늘었다. 원래 돌잔치가 주로 열리던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30층 연회장에서도 2017년께부터 본격적으로 스몰웨딩이 열리기 시작했다. 호텔 관계자는 “2017년만 해도 호텔 스몰웨딩은 대부분 재혼 예식이었다”면서 “올해는 초혼도 스몰웨딩으로 진행하려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올해 스몰웨딩이 전체 웨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를 처음 넘어섰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JW메리어트 동대문, 포시즌스 호텔 등도 소규모 웨딩 상품을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축의금 어쩌란 말이냐”
다음달 초 결혼을 앞둔 김원호씨(37)는 가족·친지 20여명만 모시고 조촐하게 식사만 하기로 했지만 일단 청첩장은 맞췄다. 회사에서 결혼축하금을 받으려면 청첩장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청첩장 제작 최소 단위가 100장이어서 나머지 80장은 어디다가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결혼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결혼식을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더라”고 전했다.
이는 정부가 제공하는 신혼부부 혜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컨대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대출신청일로부터 3개월 이내 결혼 예정자에게도 혜택을 주지만, 청첩장 또는 예식장 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스몰·노웨딩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청첩장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극소량의 제출용 청첩장만 제작하는 업체도 나타났다.
직장인 최태경씨(46)는 최근 같은 팀 후배들이 잇따라 스몰·노웨딩을 치르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축의금 전달 여부를 놓고 40~50대 상사들이 모여 논의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주변에 물어봐도 의견이 반반으로 갈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씨는 “보통 결혼식에 가든 안가든 청첩장을 받으면 축의를 하는 편인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며 “집들이 문화도 사라졌는데 그냥 ‘축하한다’ 한마디로 정리해도 되는지 눈치가 보였다”고 말했다.
축의금은 부모 세대에서도 화두다. 스몰·노웨딩을 선언한 자녀들에게 “지금까지 뿌린 축의금을 회수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도 쉽지 않다. 오는 10월 아들이 스몰웨딩을 치르는 김미희씨(57)는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 결혼식에 꼬박꼬박 참석한 데는 내 자식 결혼식을 염두에 둔 것도 있는데 조금 아쉽다”면서도 “(자녀들) 뜻이 워낙 확고한데다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지도 못해 그냥 승낙했다”고 토로했다.
이현진/이수빈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