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의 산불로 봄철 강원 지역 대형 화재의 악몽이 또다시 재연됐다. 영서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영동을 향해 빠른 속도로 부는 건조한 바람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극심한 봄 가뭄에 '태풍급 양간지풍'이 火 키워
지난 4일 오후 7시17분께 고성 토성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밤사이 시속 5㎞에 이를 만큼 빠른 속도로 해안가로 번졌다. 강한 바람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날 오후 미시령에는 순간 초속 30m가 넘는 강풍이 몰아쳤다. 해안가에도 바람의 속도가 초속 20m를 넘었다.

이 바람이 소위 ‘양간지풍’이다.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는 의미다. 고성 속초 강릉 등 영동지방은 4월이 되면 태백산맥을 넘어온 서풍이 분다. 건조한 바람이다. 이 바람은 태백산맥을 따라 내려오면서 풍속이 올라가고 강해진다. 이때 국지적으로 강한 돌풍이 분다.

조그마한 산불이라도 양간지풍을 타면 산간지역을 따라 강릉 속초 등 도심지역까지 빠른 속도로 번진다. 불을 몰고 오는 바람이라는 뜻의 ‘화풍(火風)’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기상연구소는 2012년 2월 강원 영동지역에 한번 불이 붙으면 대규모로 번지는 이유로 양간지풍을 꼽은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고성 산불은 밤사이 초속 20∼30m의 강풍을 타고 번져 고성 지역 콘도와 속초 시내, 강릉 옥계와 동해 망상까지 집어삼켰다. 밤에 산불이 나면 동쪽으로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밤이 되면서 공기가 차가워져 산에서 해안가로 부는 바람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면적 82%가 산림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영향에 더해,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림도 많아 피해가 커졌다. 지난 2일부터 건조특보가 발효 중인 탓도 컸다.

그동안 강원에서는 봄철마다 큰불이 발생하는 일이 잦았다. 1996년 3762ha를 태운 고성과 1998년 301ha의 피해를 낸 강릉 사천, 4개 시·군에 걸쳐 2만3138ha를 불태운 2000년 동해안 대형 산불 등도 봄에 일어났다. 2004년 속초 청대산(180ha)과 강릉 옥계(430ha), 2005년 양양(1141ha) 등 산불도 마찬가지였다.

12년 동안 잠잠하던 동해안 산불은 2017년 삼척(765ha)과 강릉(252ha)을 시작으로 다시 재연됐다. 지난해 2월 삼척 노곡(161ha)과 도계(76ha)에 이어 3월 고성 간성에서 356ha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