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한창 치열해지던 지난해 가을 중국 서점의 정치 관련 서가를 점령하기 시작한 책들이 있다. 서구 사회의 포퓰리즘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 주요 매체들도 관련 책들의 출간 소식을 전하며 책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정치사상이라는 민감성을 생각했을 때 책의 출간과 매체를 동원한 소개 등은 중국공산당의 각별한 관심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선전부는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이 아닌 공산당 직속 기관일 정도로 위상이 높다.

중국에 소개된 포퓰리즘 관련 책은 <민주주의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Democracy)>, <포퓰리즘 대폭발(The Populist Explosion)>, <정치동물(Politacal Animals)> 등이다. 모두 인간이나 대중의 불완전에 따른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책이다.
선전 시내 대형 서점의 서가에 전시된 포퓰리즘 관련 서적들
선전 시내 대형 서점의 서가에 전시된 포퓰리즘 관련 서적들
중국 내에서 서구 민주주의와 관련된 특정 조류를 다룬 정치 서적이 집중적으로 출간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에는 <포퓰리즘 대폭발>이 2017년 <포퓰리즘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을 뿐 나머지는 한국에서도 번역조차 되지 않았다.

국민의 정치 참여가 상당 부분 제한된 중국에서 때아닌 포퓰리즘 학습붐이 부는 것은 재미있는 부분이다. 대부분 미국에서 출간된 포퓰리즘 관련 도서들은 민주주의 국가가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정치제도를 성숙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선거권도 부여하지 않는 중국이 포퓰리즘을 열심히 학습하는 것은 생뚱맞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들 책을 소개한 매체들의 서평을 읽어보면 중국이 포퓰리즘에 '꽂힌'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경제관찰보와 차이징 등에 실린 서평에서는 포퓰리즘이 미국과 유럽을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다고 분석한다. 반이민과 자국 우선주의 등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의 집권도 당연히 포퓰리즘이 표출된 한 형태다.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 역시 포퓰리즘의 결과로 보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자유무역을 억압하고 자국 경제를 우선시하는 트럼프의 정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경제 쇠퇴에 따른 내부 불만을 돌리기 위해 중국을 타겟으로 정하게 됐고, 무역전쟁에 나서게 됐다는 것도 중국측의 시각이다.

결국 중국의 포퓰리즘 학습은 무역전쟁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중국 정부의 생각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잘못이 없는데 미국 등 선진국의 내부 문제를 바깥으로 표출하기 위해 중국이 희생양이 됐다”는 관점이다.

중국의 기술 유출과 불공정 경쟁을 큰 문제로 받아들이는 미국 등 서구 국가들과 관점 차가 크다. 무역전쟁으로 경제가 악화되는 가운데 민심을 다독일 수 있는 설명을 찾는 중국 정부의 시도 중 하나라고 분석할 수 있다.

아울러 포퓰리즘과 관련된 책은 공산당 일당 중심체제의 중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절대 정답이 아니다"는 관념을 뿌리내리게 한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이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