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연수원 19기(1988년 입소) 가운데는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여성 법조인이 많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3명이 임명됐고 ‘여성 1호 검사장’이 나왔다. 당시 이화여대 82학번 3명이 한번에 입소했다며 화제를 모았다.
연수원에서 싹튼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해 3쌍이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다. 선배 기수들에 비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많이 배출한 것도 연수원 19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대법원에 입성한 노정희 대법관은 초등학생때 부모를 여의었다. 일찍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던 영향인지 동기들로부터 “성숙하고 사려깊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결혼 생활을 하다 한의대에 들어간 ‘만학도’ 남편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판사를 그만두고 잠시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1년 판사로 복귀하면서 여성과 어린이의 권익을 보호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 그는 사법 사상 최초의 여대 출신(이화여대) 대법관이다.

조희진 변호사는 1990년 서울중앙지검의 유일한 여검사로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여성 1호’ 법무부 과장이었고, 부장검사였으며 지청장과 검사장이었다.
연수원에서 동문 수학한 인연으로 가정을 꾸린 동기도 3쌍이나 된다. 김소영 전 대법관과 백승민 변호사, 김상헌 전 네이버 사장과 노소라 변호사, 김우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이선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 부부다. 김 전 대법관은 여성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사법부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2017년)에 올랐다.

모두 300명인 19기는 10여명이 사고와 질환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동기들은 유가족을 위해 모금에 나섰고 이렇게 모인 돈이 1억원에 달했다.

일찍부터 재계로 진출해 고위직에 오른 인물도 많다. 임병용 GS건설 사장, 김상헌 전 네이버 사장, 삼성전자의 조준형 부사장과 김수목 전 부사장등이다. 임 사장은 연수원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난 CEO가 될 것”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LG그룹 상임변호사를 맡다가 GS그룹으로 옮겼고, 2013년 GS건설 사장으로 취임해 회사 수익성을 높이고 아파트 브랜드 ‘자이’의 경쟁력을 키웠다는 평가다. 지난 3월 22일 사내이사에 재선임되면서 임기를 2022년까지 보장받아 건설업계 최장수 CEO가 됐다. 지난해 GS건설이 창사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게 한 주역이다. GS건설은 6년만에 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했다. ‘재무통’인 임 사장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당시 GS그룹 실무팀장으로 입찰가를 써낼 때 무리를 하지 않고 발을 빼 유명해졌다. 이후 대우조선이 불황에 허덕이게 되면서 ‘최후의 승자’는 GS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김상헌 전 사장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그 충격으로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가 된 이후 LG그룹에 입사해 2004년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최연소 부사장이 됐다. LG에서 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이끈 뒤에 네이버로 자리를 옮겨 2008년부터 8년간 수장을 맡았다. 그는 요즘도 네이버 지식IN에 법률 관련 질문에 있으며 직접 답변을 단다.

대형 로펌에서 고위직에 오른 19기는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강 대표변호사는 패색이 짙은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어 율촌이 ‘역전의 명수’라는 소리를 듣게 했다. 그는 2년 뒤에 율촌의 경영을 이끄는 총괄대표로 내정됐다.

유욱 태평양 변호사는 2001년 국내 로펌 최초로 공익위원회를 만들고, 2002년 북한팀을 구성하는 등 공익과 남북관계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탈북 청소년을 가르치는 여명학교의 공동 설립자이며 탈북민 정착을 돕는 탈북민 취업지원센터를 세웠다.
도산법 전문가로 꼽히는 이완식 광장 변호사는 2016년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 때 세계 각국 법원들의 선박 ‘압류금지명령’을 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송평근 광장 변호사와 최돈억 화우 변호사은 각각 통신·공정거래와 건설·부동산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19기는 ‘우병우 기수’라는 껄끄러운 별명을 갖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스물 네살에 검사가 됐다. ‘특수통’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공직자와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혐의로 1심에서 1년6개월형을 받았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따져보자는 글을 법원 게시판에 올리며 검찰과 법리대결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현직 판사로는 처음으로 1억원이상을 기부해 ‘아너스 소사시어티’ 회원이 되기도 했다. 김시철 부장판사와 유해용 변호사는 법학분야 최고 권위의 상인 한국법학원 논문상을 받았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을 주도한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공보담당 박상융 특검보는 이례적으로 경찰에서 경력을 쌓았다. 서울 양천서장과 경기평택서장 등을 지냈다. 그는 연수원 때부터 오락반장으로 입담을 과시해 동기들에게 많은 웃음을 줬다.

양정철 이호철 등과 함께 ‘친(親)문재인 3철’로 통하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9기다. 전 의원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법무법인 해마루 출신이다. 진 의원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의장’을 지낸 이덕우 변호사,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 장완익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 등이 모두 해마루 출신의 19기다.
정치인 가운데는 검사 출신 김재경 자유한국당 의원과 ‘비(非)문재인계’의 대표격인 최재천 전 의원, 주성영 전 의원 등이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