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정부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연금 고갈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의 절반이 개혁을 논의하고 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이 내는 돈(연금보험료)은 늘리고 받는 돈(연금보험금)은 줄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을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각국은 반발이 만만찮아 개혁의 돌파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의 절대 권력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조차 연금개혁을 추진하다 난관에 봉착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기습적으로 연금개혁안을 발표하자 80%에 달하던 지지율은 60%대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전역 80개 도시에서 정부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은 결국 연금 수급 연령 등에서 양보했다. 남성의 연금 수급 연령은 2028년까지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방안을 그대로 두되, 여성의 연금 수급 연령은 2034년까지 55세에서 63세로 늦춘다는 당초 안에서 60세로 3년 앞당겼다. 개혁안의 후퇴로 추가된 비용은 6년간 5000억루블(약 8조원)에 달했다.

니카라과 정부는 지난해 4월 연금재정 건전화를 위해 연금보험료를 최대 22% 늘리고 전체 혜택을 5% 줄이는 연금개혁을 발표했다가 전국적인 항의 시위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유혈사태를 겪었다. 개혁안은 1주일 만에 철회됐다.

서방 선진국도 진통을 겪고 있긴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의 연금개혁은 노동조합 반대에 부딪혀 교착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10월 벨기에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영국 HSBC홀딩스는 “유럽의 연금개혁 실패는 재정에 도사리는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의 반발 때문에 아예 개혁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왔다. 호주 정부는 2035년까지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연금개혁안을 2014년 내놨지만 국민의 반대로 4년간 표류하다 지난해 포기했다.

정권 명운이 걸려 있는 연금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된다. 독일 연금 전문가 카를 힌리히스 브레멘대 교수는 “(코끼리와 연금은 모두) 덩치가 크고 인기가 많으며 둔해서 움직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