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무용이라고 하면 흔히 조선시대와 같은 옛날을 배경으로 추는 전통춤을 떠올린다. 서울시무용단이 다음달 23~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놋-N.O.T’은 다르다. ‘No One There?(거기 아무도 없어요?)’란 뜻의 이 작품은 갑질 논란, 미투(me to) 등 지금의 대한민국을 비춘다. 동작도 사뭇 다르다. ‘오고무’ ‘꼭두각시’ 등 고유의 춤사위에 현대적 움직임을 결합했다.

이 작품은 지난 1월 취임한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사진)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이다. 지난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정 단장은 “서울시무용단은 그동안 한국무용의 발전을 위해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해 왔다”며 “최근 잠시 방향성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국 창작 무용의 산실’이란 본연의 위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정 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다. 2012~2015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할 때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잃어버린 얼굴 1895’ 등을 제작했다.

정 단장은 이 작품을 통해 서울시무용단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한껏 드러내겠다고 했다. 서울시가 1974년 설립한 이 무용단은 그동안 전통 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하고 창작해 왔다. 그는 “서울시무용단이 한국무용을 알리기 위해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며 “전통에만 집중하거나 춤보다 극에 중심을 둔 작품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단장 자리도 1년4개월 동안 비어 있었다. 그는 이로 인해 더 혼란스러웠을 단원들에게 무용단이 나아가야 할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정 단장은 “좀 더 많은 시민이 한국무용을 보게 하려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우리 고유의 몸짓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놋-N.O.T’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10대 소녀의 시선으로 오늘날 서울을 바라보며 일어나는 일들을 담는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녀는 이리저리 밀리다 격정적인 몸짓으로 울분을 토해내기도 한다. 그는 “한국무용의 핵심은 한을 풀어내는 것”이라며 “현대인들이 잘 풀지 못하는 응어리를 이 작품을 보며 터뜨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연출은 뮤지컬 ‘레드북’ 등을 만든 연출가 오경택이 맡았다. 두 사람은 앞서 ‘궁:장녹수전’ 작업을 함께했다. “극 연출을 주로 하셨던 분들은 극을 살리기 위해 무용을 많이 빼는 경향이 있어요. 반면 오 연출은 무용이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합니다.”

정 단장은 2014년 서울예술단의 가무극 ‘소서노’를 안무뿐 아니라 직접 연출도 했다. 그는 “나를 도와줄 안무가가 있어 연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언젠가 다시 한번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단원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단원 34명의 평균 나이가 43세인데, 20대 무용수가 할 힘든 동작까지 열심히 해주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외부 안무가들을 불러 함께 작업할 기회를 주고,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작품도 만들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몸도 생각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