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측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70세.

1949년 인천광역시에서 한진그룹 창업주인 전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조양호 회장은 경복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9년 한진정보통신의 사장에, 1992년에는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다. 1996년에는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에는 대한항공 대표이사를 거쳐 2003년에는 한진그룹 2대 회장을 맡아 계속 경영을 했지만 올해 3월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되며 20년만에 경영권을 놓게 됐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것은 1974년은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절이었다. 1차 오일쇼크에 이어 1978년부터 1980년까지 2차 오일쇼크가 이어지면서 유나이티드 항공을 비롯한 전 세계 유명 항공사들은 직원 수 천명을 감원했다. 당시 조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줄일 수 있는 원가는 줄이고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이는 경영 전략을 세웠다. 항공기 구매도 계획대로 진행하며 불황에도 오히려 호황을 대비했다. 이 같은 결단은 오일쇼크 이후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 중동 수요 확보와 노선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1997년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의 결단도 큰 화제였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를 구매 계약했고 보잉은 감사의 뜻으로 계약금을 줄이고 금융까지 유리하게 주선했다. 결국 이때의 결정이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스카이팀 등 국제 항공업계를 이끌었다. 그는 세계 항공업계에서 다진 식견을 바탕으로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고 이는 대한항공이 글로벌 명품 항공사로 도약해 나가는데 뒷받침이 됐다는 분석이다.

조 회장의 활동 영역은 비단 대한항공의 경영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물류기업인 한진그룹 경영에서 얻은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과 글로벌 마인드를 스포츠에 접목시켰다. 특히 대한체육회의 평창유치위원회 위원장 추천을 수락하고 1년 10개월 동안 유치위원장으로서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 이동했다.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러한 노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이어졌다.

2014년 7월부터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지지부진하던 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경기장 및 개폐회식장 준공 기반을 만드는 한편,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를 성사시키는 등 평창동계올림픽을 본 궤도에 올렸다.

또한 조 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이자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으로서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대한항공에 탁구, 배구 실업팀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해 운영했다.

조 회장의 왕성한 활동은 한국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2004년 6월 제11대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으로 선임된 이래 14년간 한국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 온 것이다. 특히 국가가 없으면 방위산업도 없다는 '방산보국(防産報國)'의 가치를 토대로 방위산업 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생산 물량의 지속성 확보에 온 힘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일가의 몰락은 그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갑질' 사건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2014년 12월 5일 조 전 부사장은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인천행 KE086 항공기 일등석에서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았다. 그녀는 탑승 게이트로 항공기를 되돌리고 박창진 사무장을 질책하며 항공기에서 내리게 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또한 지난해 3월 16일에는 조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본사에서 회의 도중 광고업체 관계자 등에게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리 지르며 유리컵을 던지고 종이컵에 든 매실 음료를 뿌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벌들의 갑질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아울러 4월 19일에는 그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갑질 폭행'이 문제였다. 이 이사장이 운전기사, 가정부, 직원 등에게 일상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 논란이 언론에 연이어 보도되면서 조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이는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경영진 일가족의 일탈 행위에 우려를 표명하고 경영진 면담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1월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여부 및 행사 범위를 검토하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2월 1일에는 국민연금, 한진칼에 대해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하고 대한항공에는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되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했다. 같은 날 검찰은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을 대한항공 항공기와 소속 직원을 동원해 해외에서 구매한 명품과 생활용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지난달 5일에는 대한항공 이사회가 조양호 회장 연임안 주주총회 상정 확정했고 26일에는 해외 공적 연기금 3곳이 조 회장 재선임 안건 반대 의견 표명, 국민연금도 조 회장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반대 결정했다.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시민단체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이 소액주주 140여명(0.54%) 위임받아 조 회장 연임 반대표을 던졌고 대한항공 주주총회서 조 회장은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표직을 잃게 됐다. 주주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 총수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사례는 조 회장이 처음이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부터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폭행'에 이르기까지 총수 일가의 일탈 행위가 영향을 미쳤다.

한편 한진그룹 관계자는 8일 "미국에 머무르고 계셨던 회장께서 숙환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가족으로부터 전달받았다"며 "미국에서 시신 운구 과정 등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아직 국내 장례 일정과 절차 등은 추후 결정되는대로 알려드리겠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