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창립 50주년에 하늘로 돌아간 조양호 회장[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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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산업 경쟁력 높여
위기 때 빛난 리더십
위기 때 빛난 리더십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의 사인은 '폐질환'"이라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70)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4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5),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36)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CEO에 올랐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외국인과 소액주주의 '반대'로 사내이사 연임이 좌절됐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45년 동안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전반적인 실무를 두루 거쳤다. 1992년에는 대한항공 사장을, 1999년과 2003년엔 각각 대한항공 회장과 한진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국제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는 등 수차례 경영 위기를 선제적 투자로 극복해왔다.
뿐만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항공기를 매각하고 다시 임차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이듬해 보잉 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하는 등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 2008년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에어를 창립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위기 극복 능력 덕분에 대한항공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항공기 166대, 국제 노선 43개국 111개 도시란 규모를 갖추게 됐다. 1969년 당시(항공기 8대‧노선 3개)와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조 회장은 2015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하는 등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해왔다. 특히 2009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1년10개월간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그는 2014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 준비와 경기장 및 계페회식장 준공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조 회장은 다만 올해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낙마하는 등 잡음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이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토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쏟았다”며 “다만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고, 안타까운 결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대한항공의 [입장 전문]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美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약력]
△ 1949년 인천 출생
△ 1964년 경복고등학교 입학, 1968년 美 Cushing Academy 고등학교 졸업,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학사, 1979년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인하대 경영학 박사, 1998년 Embry Riddle 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2006년 우크라이나 국립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 1974년 대한항공 입사
△ 1984년 정석기업 사장
△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
△ 1992년 대한항공 사장
△ 1995년 아일랜드 명예총영사
△ 1995년 한국항공대학(정석학원) 이사장
△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 199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9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
△ 1997년 美 남가주대 재단이사
△ 1999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1999년 대한항공 회장
△ 2000년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 2003년 한진그룹 회장
△ 2004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
△ 2008년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 2009년 대한체육회 이사
△ 2009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 2009년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 2010년 PEACE AND SPORT 대사
△ 2010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 2014년 한불상호교류의해 조직위원장
△ 201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
△ 2014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
△ 2014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70)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4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5),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36)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CEO에 올랐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외국인과 소액주주의 '반대'로 사내이사 연임이 좌절됐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45년 동안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전반적인 실무를 두루 거쳤다. 1992년에는 대한항공 사장을, 1999년과 2003년엔 각각 대한항공 회장과 한진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국제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는 등 수차례 경영 위기를 선제적 투자로 극복해왔다.
뿐만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항공기를 매각하고 다시 임차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이듬해 보잉 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하는 등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 2008년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에어를 창립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위기 극복 능력 덕분에 대한항공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항공기 166대, 국제 노선 43개국 111개 도시란 규모를 갖추게 됐다. 1969년 당시(항공기 8대‧노선 3개)와 비교하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조 회장은 2015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하는 등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해왔다. 특히 2009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1년10개월간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그는 2014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 준비와 경기장 및 계페회식장 준공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조 회장은 다만 올해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낙마하는 등 잡음에 시달리기도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이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토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쏟았다”며 “다만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고, 안타까운 결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대한항공의 [입장 전문]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美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
조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약력]
△ 1949년 인천 출생
△ 1964년 경복고등학교 입학, 1968년 美 Cushing Academy 고등학교 졸업, 1975년 인하대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 학사, 1979년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인하대 경영학 박사, 1998년 Embry Riddle 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2006년 우크라이나 국립항공대학 항공경영학 명예박사
△ 1974년 대한항공 입사
△ 1984년 정석기업 사장
△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
△ 1992년 대한항공 사장
△ 1995년 아일랜드 명예총영사
△ 1995년 한국항공대학(정석학원) 이사장
△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 199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 1996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
△ 1997년 美 남가주대 재단이사
△ 1999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 1999년 대한항공 회장
△ 2000년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 2003년 한진그룹 회장
△ 2004년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
△ 2008년 한·사우디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 2009년 대한체육회 이사
△ 2009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 2009년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 2010년 PEACE AND SPORT 대사
△ 2010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 2014년 한불상호교류의해 조직위원장
△ 201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
△ 2014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
△ 2014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