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유치 이끈 조양호 회장…체육발전 힘보탠 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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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압력에 평창 조직위원장서 사퇴하기도
8일 숙환으로 타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기업인이면서 한국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탠 체육인이었다.
특히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체육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대한항공 그룹 산하에 배구단과 탁구단을 운영하며 스포츠에 열정을 보인 조 회장은 2008년 7월 대한탁구협회 회장에 선임돼 체육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어 두 차례 유치 도전에 실패한 평창이 결점을 보완하려면 기업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조 회장은 2009년 9월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평창의 도전을 진두지휘했다.
대중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던 조 회장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잦은 프레젠테이션을 능숙하게 소화하고자 스피치 개인 과외를 받기도 하는 등 올림픽 유치에 열성을 보였다. 김 전 지사가 2010년 6월 퇴임하면서 유치위 단독위원장이 된 조 회장은 항공사 총수로서 쌓은 탄탄한 국제 네트워크와 국제 감각을 살려 2011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이 마침내 동계올림픽 유치지로 선정될 때까지 22개월 동안 기업 경영도 미뤄둔 채 평창에 '올인'했다.
평창을 알리고 지지를 얻고자 34차례 해외를 돌았다.
이동 거리는 50만9천㎞에 달했다.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으로 2012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도 선임된 조 회장은 2014년 7월 김진선 초대 위원장의 뒤를 이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조직위원장으로 앉자마자 불거진 올림픽 한일 분산 개최 여론을 일거에 잠재웠고, 2016년부터 시작된 올림픽 테스트이벤트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등 30년 만에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활기차게 임무를 수행했다. 2014년 12월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과 해운업계 불황에 따른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 사태마저 겹쳐 그룹 경영에 난항을 겪던 와중에도 평창조직위원장으로서 올림픽 준비는 물론 조직위와 IOC를 잇는 가교 노릇을 왕성하게 펼치던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불과 647일 앞둔 2016년 5월 3일 조직위원장을 전격 사퇴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조 회장은 긴급한 그룹 현안을 수습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훗날 사퇴에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시공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조 회장을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고, '윗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정황을 확인했다. 실제 조 회장은 훗날 검찰 조사에서 당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그만두라는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밝혀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다.
결국 평창올림픽 유치에 앞장서고도 청와대의 종용으로 조 회장은 올림픽 개최를 끝까지 매듭짓지 못한 채 조직위원장 자리를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내줬다.
조 회장은 2013년 7월 한국을 대표하는 IOC 위원 선출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진 못했다.
/연합뉴스
특히 삼수 끝에 유치에 성공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체육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대한항공 그룹 산하에 배구단과 탁구단을 운영하며 스포츠에 열정을 보인 조 회장은 2008년 7월 대한탁구협회 회장에 선임돼 체육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어 두 차례 유치 도전에 실패한 평창이 결점을 보완하려면 기업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조 회장은 2009년 9월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평창의 도전을 진두지휘했다.
대중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던 조 회장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잦은 프레젠테이션을 능숙하게 소화하고자 스피치 개인 과외를 받기도 하는 등 올림픽 유치에 열성을 보였다. 김 전 지사가 2010년 6월 퇴임하면서 유치위 단독위원장이 된 조 회장은 항공사 총수로서 쌓은 탄탄한 국제 네트워크와 국제 감각을 살려 2011년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이 마침내 동계올림픽 유치지로 선정될 때까지 22개월 동안 기업 경영도 미뤄둔 채 평창에 '올인'했다.
평창을 알리고 지지를 얻고자 34차례 해외를 돌았다.
이동 거리는 50만9천㎞에 달했다.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으로 2012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도 선임된 조 회장은 2014년 7월 김진선 초대 위원장의 뒤를 이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조직위원장으로 앉자마자 불거진 올림픽 한일 분산 개최 여론을 일거에 잠재웠고, 2016년부터 시작된 올림픽 테스트이벤트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등 30년 만에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활기차게 임무를 수행했다. 2014년 12월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과 해운업계 불황에 따른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 사태마저 겹쳐 그룹 경영에 난항을 겪던 와중에도 평창조직위원장으로서 올림픽 준비는 물론 조직위와 IOC를 잇는 가교 노릇을 왕성하게 펼치던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불과 647일 앞둔 2016년 5월 3일 조직위원장을 전격 사퇴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조 회장은 긴급한 그룹 현안을 수습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훗날 사퇴에 청와대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 시공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조 회장을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고, '윗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정황을 확인했다. 실제 조 회장은 훗날 검찰 조사에서 당시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그만두라는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밝혀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다.
결국 평창올림픽 유치에 앞장서고도 청와대의 종용으로 조 회장은 올림픽 개최를 끝까지 매듭짓지 못한 채 조직위원장 자리를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내줬다.
조 회장은 2013년 7월 한국을 대표하는 IOC 위원 선출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진 못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