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재 당국, 피레우스항 개발사업에 제동 걸어
'중국 위협론' 영향 가능성…'선거용 사업 지연' 해석도
中 일대일로 사업, 그리스 '문화유적 보호'에 발목 잡혀
그리스를 핵심 거점으로 삼아 유럽에 진출하려던 중국의 야심 찬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이 '문화유적 보호'라는 뜻밖의 암초에 제동이 걸렸다.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그리스 문화재 보호 당국인 중앙고고학평의회(KAS)는 지난 3일 문화유적 보호를 이유로 중국원양운수(코스코·Cosco)가 추진하던 피레우스항 개발사업을 만장일치로 부결했다.

아테네 인근에 있는 피레우스항은 그리스 최대의 항구이자 컨테이너 물동량에 있어 스페인 발렌시아에 이어 지중해에서 두번째 규모인 항구이다.

지난 2016년 피레우스항 지분 67%를 취득한 코스코는 피레우스를 중국의 유럽 해운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총사업비 17억 달러(약 1조9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코스코는 크루즈선 터미널 옆에 쇼핑몰과 5성급 호텔을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그 인근에는 새로운 선착장과 여객 터미널을 건설해 피레우스를 스페인 발렌시아를 능가하는 지중해 최대 항구로 키우고자 했다.

하지만 이 야심 찬 사업은 그리스 중앙고고학평의회의 반대로 일단 중단될 수밖에 없게 됐다.

중앙고고학평의회의 반대에는 문화유적 측면의 고려뿐 아니라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집권당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지지해왔으나, 지난 2월에는 코스코의 피레우스항 개발사업 일부를 '환경적, 심미적' 이유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올해 선거를 앞두고 집권당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일종의 '지연 전술'을 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그리스 언론에 의해 제기된다.

중국은 그리스를 일대일로의 유럽 거점이자 수출 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해왔으며, 재정난과 실업 문제에 시달리는 그리스도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일부에서는 그리스가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최근에는 유럽연합(EU)마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면서 이를 부채질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그리스 집권당이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피레우스항 개발사업을 '보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그리스로서도 중국의 대규모 투자가 절실한 만큼 피레우스항 개발사업이 영구히 중단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일정 기간 갈등 후 사업이 재개될 것으로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 추진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일깨워준다고 지적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위제 연구원은 "막대한 위안화와 달러를 참여국에 보여준다고 해서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에서 성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일대일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여국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과 지역 관습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사회적 책임을 자각해 참여국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