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전선 해외영업팀은 최근 해외 수주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 전력공사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잇따라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어서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알제리 모로코 등 아프리카 국가까지 모든 입찰 서류를 자국어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케이블에 문제가 생기면 ‘24시간 이내 긴급 복구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전력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력은 기간산업인데 최저가 입찰 고수?…"한국만 외국산 놀이터"
해외는 자국 산업 보호하는데…

국내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력이 먼저 해외 기업들을 불러들여 ‘국제 입찰’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8일 전선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완도와 제주를 연결하는 ‘3차 제주 육지 전력 연계망 프로젝트’를 국제 입찰하고 있다. 5월 초고압 직류송전(HVDC) 케이블 입찰을 앞두고 지난달 25일 열린 기술평가 설명회에는 중국 1위 케이블 업체인 ZTT,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일본 스미토모 등이 참석했다. 한전은 지난해 ‘서남해 해상풍력발전 프로젝트’부터 국제 입찰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선업계는 한전의 국제 입찰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을 끌어들여 경쟁을 붙이면 가격은 떨어질지 몰라도 국가 전력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된다는 이유에서다. 전력 케이블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조차 국제 입찰 대상에서 제외한 품목이다.

일본은 전력망 구축 사업을 순수 국내 입찰로만 진행한다. 대만도 지난해부터 2023년까지 5년간 161kV, 345kV급의 초고압 케이블을 수입제한 품목으로 지정했다. 중동 국가들도 자국 전선 업체에 10~15%의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이외에 자국 내 공장 보유, 납품 실적, 사전 인증, 유지 보수 방안 등의 기준을 만들어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국제 입찰을 추진하자 업계에서는 “‘탈원전’ 정책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한전이 구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무리하게 국제 입찰을 진행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전은 기술력 등을 심사하는 1차 기준을 통과한 업체를 상대로 2차 심사를 한다. 2차 심사에서는 가격만을 기준으로 수주 기업을 결정한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이 전력망 입찰에 저가를 앞세운 중국 업체를 참여시키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 기업 입찰 장려하는 한국

더 큰 문제는 국가 전력 인프라가 해외 기업의 ‘볼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00년 한전이 해남과 제주를 해저 케이블로 연결하던 중 해저 구간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케이블 납품 업체인 프랑스 넥상스가 이를 복구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2006년 같은 전력망 구간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한전은 국내 전선업계에 ‘SOS’를 보내 겨우 시설을 복구했다.

HVDC 해저케이블을 ‘미래 먹거리’로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국내 전선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LS전선은 최근 강원 동해에 해저케이블 제2공장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해저케이블은 인건비와 운송비가 많이 드는 만큼 수주 지역에 공장을 짓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국내 시장 성장 가능성과 정부의 일자리 창출 움직임에 동참하기 위해 해외 대신 국내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에도 LS전선은 국내 시장에서 HVDC 해저케이블 수주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국제 입찰이 진행될 경우 남북한 경협과 동북아 슈퍼그리드 등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외국 업체만 이익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국내 기업만을 대상으로 입찰을 진행할 경우 HVDC 해저케이블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LS전선에 대한 ‘특혜’로 비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