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내 경제상황을 ‘경기 둔화’로 진단했던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개월 만에 ‘경기 부진’으로 우려의 수위를 더 높였다. 최근 생산·소비·투자·수출지표가 일제히 ‘후진’ 신호를 보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주목되는 것은 KDI 전망을 계기로 추가경정예산 편성, 금리 인하 등 정부와 통화당국의 선제적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디스가 올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내렸을 때만 해도 “동의하기 어렵다”던 정부가 KDI의 경기 부진 공식화에 대해선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 정부와의 정책협의 결과를 발표했을 때도 감지된 바 있다. 당시 IMF는 “GDP 0.5% 규모의 추경 편성이 뒷받침되면 한국 정부의 2.6~2.7% 성장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 부양 필요성을 묻는 국회 질문에 ‘IMF의 추경 권고’를 언급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GDP의 몇 퍼센트를 추경으로 투입하라는 IMF의 이례적인 주문이 독자적으로 나왔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다. KDI의 경기 부진 공식화 역시 정부가 사전에 몰랐을 리 없고 보면, 재정을 살포할 구실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경기 하강 속도가 빠르고 폭 또한 급격히 확대될 우려가 있다면 정부의 선제적 역할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기 부진에는 구조적 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꾸로 가는 노동시장 개혁, 겉돌기만 하는 규제 혁신 등이 기업실적 악화에 이어 투자심리의 급격한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도외시한 단기적 경기 처방이 효과를 낼 리 없다. 정부는 경기 부진을 경제 체질을 끝없이 약화시키는 반복적 재정 살포의 구실로 삼을 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란 근본 처방으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