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연합뉴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슈퍼 매파(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월말 ‘하노이 노딜’에 이어 8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란혁명수비대를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예고하는 과정에서도 볼턴의 입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로 미국과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볼턴은 최대 복병이 될 수 있다. 볼턴은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빅딜(일괄타결)’이 요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턴은 1년 전인 지난해 4월9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했다. 마이클 플린, 허버트 맥매스터에 이어 세번째 ‘백악관 안보수장’이다. 취임 당시만해도 그는 ‘한물간 외교관’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붙잡는 실세로 자리를 굳혔다.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볼턴의 존재감을 보여준 자리였다. 하노이 정상회담 전만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스몰딜’을 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 약속해도 미국이 일부 제재완화를 할 것이란 관측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김정은에게 “올인하라”며 빅딜을 요구했다. 북한이 핵·미사일뿐 아니라 생화학무기까지 폐기해야 제제를 해제하겠다는 얘기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건넨 빅딜 문서엔 ‘북한 핵무기를 미국으로 반출하라’는 요구조건까지 담겼다. 과거 리비아 핵 폐기 과정에서 볼턴이 주장했던 방식이다. 반면 김정은은 영변핵시설 폐기 대가로 유엔의 핵심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고집했고, 결국 하노이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볼턴의 이름을 거론하며 “하노이에서 적의와 불신을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볼턴과 북한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볼턴은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3년 방한 당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지옥에 비유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독재자’, ‘폭군’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북한은 볼턴을 “인간 쓰레기” , “흡혈귀”라고 맹비난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볼턴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재수없는 사람”이라며 “인디언을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없이 잘했다고 하는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난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볼턴은 이란 문제에서도 강경책을 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5월 이란핵협정을 탈퇴했다. 이후 이란에 새로운 핵협정 체결을 요구하며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어 8일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를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조직을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한건 이번이 처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볼턴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이같은강경책을 강하게 지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2월 러시아의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 파기를 선언하는 과정에서도 볼턴의 입김이 컸다.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익은 볼턴의 장기를 ‘몰아치기 공격’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이 압도될 때까지 공격적으로 자기 주장을 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볼턴은 흔히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불린다. 하지만 볼턴은 자신을 ‘친미국주의자’라고 소개한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할뿐이라는 것이다. 볼턴은 국제협약이나 동맹국과의 조약이 묵을 옥죄선 안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공화당 주류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부분이기도하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데 탁월한 수완을 보였다. 시리아 철군 문제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동맹국과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하자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동맹을 중시하라”며 사표를 던졌다. 반면 볼턴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여 결국 시리아 철군 문제를 유야무야시켰다.

볼턴은 전임자들과 업무 스타일도 다르다. 플린이나 맥매스터 보좌관은 각 부처의 의견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치중했다. 반면 볼턴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전달되도록 하는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볼턴의 이런 성향과 장문의 보고서를 읽거나 전문가의 자문을 듣기 싫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맞물리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볼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볼턴은 스스로를 “결정권자가 아닌 조언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결정권자 역할을 할 때가 많다는 말이 나온다.

볼턴은 1948년생이다.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 공화당 정부에서 일했다. 보수 성향 폭스뉴스에 고정출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