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024년부터 인물과 도안을 바꾼 새 지폐를 발행해 사용키로 했다. 다음달 새 일왕 즉위와 함께 ‘레이와(令和)’라는 새 연호가 사용되는 것에 발맞춰 사회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지폐 도안을 발표했다.

1만엔(약 10만원)권 지폐는 1984년 이후 사용됐던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초상 대신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를 모델로 삼았다. 시부사와는 다이이치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과 도쿄증권거래소 등을 설립한 인물이다. 다이이치은행이 발행했던 ‘다이이치은행권’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 당시 경제 침탈의 첨병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시부사와는 메이지(明治)와 다이쇼(大正) 시대를 풍미했던 사업가로 일본에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구한말 화폐를 발행하고 철도를 부설하는 한편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 사장을 맡으며 한반도 경제 침탈에 앞장선 인물로 여겨진다. 특히 한반도의 첫 근대적 지폐(다이이치은행권)에 얼굴이 그려져 한국에 치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5000엔(약 5만원)권은 여성교육 선구자인 쓰다 우메코(津田梅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1000엔(약 1만원)권에는 페스트균 연구자이자 파상풍 치료법 개발자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가 등장한다. 현재 1000엔권 모델인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에 이어 세균학자가 연이어 화폐모델이 된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