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쌀 소비는 매년 줄고 있다. 2010년 1인당 72.8㎏에서 작년 61㎏으로 감소했다.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가 수와 재배면적이 줄고, 국내 쌀산업 자체가 발전할 수 없다는 우려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쌀 수요처가 등장했다. 편의점이다. 도시락 시장이 급성장하며 편의점이 구매하는 쌀의 양이 매년 큰 폭으로 늘며 주요 소비 창구로 부상했다. CU, GS25, 세븐일레븐 등이 지난해 소비한 쌀은 약 5만3000t에 달했다. 전년 대비 14%가량 증가했다. 86만 명이 1년간 먹는 양과 비슷하다.

편의점서 하루에 도시락 45만개 팔려

3대 편의점이 지난해 사들인 쌀의 양은 CJ제일제당이 햇반 컵밥 냉동밥 등을 만들기 위해 구매한 양(4만4000t)보다 많다. 증가하는 도시락과 삼각김밥, 김밥, 가정간편식(HMR) 등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쌀 구매를 늘리고 있다. 특히 도시락 판매가 가파르게 증가한 영향이 컸다. 2013년 779억원에 불과하던 편의점 도시락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3500억원으로 5년 만에 4.5배 증가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GS25의 ‘혜자도시락’, CU의 ‘백종원도시락’ 등 연간 1000만 개 이상 팔리는 히트 상품이 줄줄이 나오며 시장을 키웠다.

주요 편의점의 하루 도시락 판매량은 대략 45만 개에 이른다. 외식 물가가 최근 큰 폭으로 뛰자 3000~4000원이면 사먹을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이 ‘반사이익’을 얻었다.

편의점 중 가장 쌀을 많이 소비한 곳은 GS25다. 지난해 기준 2만5000t으로 전년 대비 13.6% 증가했다. CU(1만4800t)와 세븐일레븐(1만3200t)이 그 뒤를 이었다. 편의점 후발주자인 이마트24도 올 1분기 쌀 사용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7% 증가하는 등 최근 쌀 구매를 큰 폭으로 늘리고 있다.

도시락 등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쌀 관련 상품은 저렴하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쌀의 품질은 높다. BGF푸드 등 전국 6곳의 협력사에서 관련 상품을 공급받는 CU는 전국영농조합법인 등과 협업해 도정한 지 사흘 이내인 쌀 표면이 깨지지 않은 ‘완전립’을 쓴다. 품종은 쌀알이 평균 1.3배 크고 수분이 많아 밥맛이 좋은 ‘신동진미’다.

세븐일레븐은 농촌진흥청이 국내 7대 품종으로 선정한 ‘삼광미’를 쓰고 있다. 충남 예산과 경북 경주 지역 농협에서 공급받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를 통해 정상립의 비중과 수분 함량 등 11가지 품질 관리 기준을 세워 꼼꼼하게 확인한다. 도정한 당일 입고해 사흘 이내 사용하고 있다.

HMR 시장 커지면 쌀 수요 더 늘 듯

쌀 관련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GS25는 작년 11월 ‘유어스 미(米)라클 쉐킷 쌀라드’란 샐러드를 내놨다. 쌀밥과 보리밥 위에 양상추, 파프리카, 강낭콩, 참치 등을 토핑으로 올리고 샐러드 드레싱을 뿌려 흔들어 먹는 식사 대용식이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레시피 콘테스트 입상작을 GS25가 상용화했다.

GS25 관계자는 “국내 쌀 소비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편의점에선 도시락과 삼각김밥 등 쌀이 들어간 제품 판매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쌀 관련 상품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일본처럼 편의점이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편의점은 연구소를 설립해 도시락 등에 쓰는 쌀의 품종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

편의점과 식품업체를 통한 쌀 소비가 늘면서 수요가 줄고 있는 상품도 있다. 밥솥이다. 쿠쿠전자와 함께 국내 밥솥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쿠첸의 밥솥 매출은 2015년 약 2100억원에서 지난해 1800억원으로 300억원 감소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