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안보 부각해 보수층 결집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에 다가선 네타냐후…보수·민족주의 성향
이스라엘 총선에서 우파진영의 선전으로 연임 가능성이 커진 베냐민 네타냐후(69) 총리는 13년 이상 집권 중인 강경 보수파 정치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2009년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 뒤 계속 집권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5선 고지에 오르고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공산이 크다.

그가 연임할 경우 올해 7월이 되면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13년 5개월 재임)를 제치고 가장 오랫동안 총리직을 수행한 인물이 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집권 기간 팔레스타인 분쟁, 이란 핵 문제 등에서 강경한 노선을 걸어왔고 강한 유대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

특히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뒤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아래 그의 강경정책이 더욱 힘을 받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지난달 소셜미디어에서 "이스라엘은 유대민족만을 위한 국가"라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또 이달 6일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말해 아랍권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발을 샀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월 이스라엘 검찰이 그를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등 부패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난관에 직면했지만, 막판 보수표 결집에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작년 11월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당시 국방장관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 합의를 비판한 뒤 사임해 연립정부가 붕괴 위기에 놓이자 네타냐후 총리는 조기총선 카드를 수용했다.

다부진 인상의 네타냐후 총리는 말솜씨가 뛰어나고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비비'(Bibi)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는 1949년 10월 이스라엘의 지중해 도시 텔아비브에서 태어났고 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네타냐후 총리는 1982년 주미 부대사에 임명됐고 1984∼1988년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냈다.

이후 1988년 초선 의원에 오른 뒤 1993년 보수 리쿠드당 당수가 되면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6년 선거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몬 페레스 노동당 대표를 누르고 처음 총리에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46세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1999년 총선에서 패배 후 정계를 떠났다가 2003년 아리엘 샤론 총리의 연립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일했다.

그러나 2년 뒤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의 정착촌 철수를 감행한 데 반발해 장관직을 사임했다.

네타냐후는 2005년 12월 다시 리쿠드당 대표에 올랐지만 리쿠드당은 이듬해 총선에서는 고작 12석을 얻으면서 참패했다.

2009년 총선에서도 리쿠드당은 집권당 카디마당에 1석 차이로 패해 2위에 그쳤다.

그럼에도 네타냐후는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아 10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고 2013년과 2015년 총선에서 연달아 승리했다.

안보를 중시하는 네타냐후 총리는 젊은 시절 이스라엘 특공대에서 근무하면서 수차례 작전에 참여해 다치기도 했다.

그의 친형인 요나탄은 1976년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에게 납치된 프랑스 여객기를 구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펼친 '엔테베작전'에서 특수부대를 지휘하다 숨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친형의 사망을 계기로 테러 공부에 전념해 3권의 테러 관련 전문서를 내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