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숨이 붙어 있는 한 사는 법을 계속 고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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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인생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소크라테스의 죽음.’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BC 4~AD 65)의 인생을 축약한 표현이다.
로마 스토아학파 거두였던 세네카는 그리스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곧잘 비교된다. 서양인들에게 세네카는 아리스토텔레스(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처럼 ‘황제(로마 네로)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네카는 사상가에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했고, 수많은 작품도 남겼다. 《트로이의 여인들》 등 그리스 작품을 각색한 9편의 동명(同名) 비극이 대표 작품이자 현존하는 로마시대 유일의 비극들이다. 이들 작품은 셰익스피어 등 후대 문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삶의 비극에서 나온 치유의 언어
세네카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비극적이었다. 네로를 보필하며 로마 국정을 좌지우지한 불과 몇 년을 제외하곤 투옥과 귀양살이를 반복했다. 폭군으로 돌변한 네로를 암살하려던 음모에 연루됐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을 명령받았다. 바로크 미술의 대가 루벤스의 ‘세네카의 죽음’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신고전주의 미술의 거장 다비드)처럼 독약을 마시고 초연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세네카가 굴곡진 삶에서 분출되는 분노, 좌절, 허무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남긴 글이 《인생론》이다. 국내외에서 소개되는 《인생론》은 그의 수필 《인생의 짧음에 관해(On the Shortness of Life)》에 《마음의 평정에 관해(On Tranquillity of Mind)》 《화(火)를 다스리는 법(On Anger)》 등이 추가된 것이다.
《인생론》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이성의 명령에 끝없이 귀를 기울이라”는 스토아학파의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준다. “자신을 성찰해 마음을 다스리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자 인생의 성공”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일상의 번뇌를 못 벗어나는 범인(凡人)들은 불우했던 삶에서 자신을 치유하려고 몸부림친 세네카에게서 동질감과 위안을 얻는다.
수많은 명언을 만들어낸 그의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번뜩이는 표현은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창조적 오역(誤譯)’이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세상에 알린 사람도 세네카다. 우리가 아는 상당수 명언들도 출처를 따져보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인생론을 읽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세네카가 《인생론》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분노다. “화는 모든 병과 불화의 근원이다. 화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하는 촉매다. 화는 인간을 칼의 끝으로 뛰어들게도 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벌컥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칭찬은 협동을 유도하지만 화는 불화를 즐긴다.”
세네카는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인생은 단편소설과 같다. 하지만 인간이 수명을 짧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짧게 만든다. 주체할 수 없는 부(富)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미미한 재산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금세 불어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다. 욕망에 휘둘리는 인생은 낭비일 뿐이다.”
세네카는 “끊임없는 배움이야말로 스토아학파가 지향하는 최고 경지인 이성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배움에는 평생이 걸린다. 어디 가나 좋은 스승이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려면 평생이 걸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위인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세상을 하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최악의 결정은 결정하지 않는 것"
세네카는 ‘은혜’의 유용성에 관한 말도 많이 남겼다. “인간관계를 정립하고,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려내는 유용한 근거”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은혜를 베푸는 방법과 갚는 방법도 자세히 설명했다. “은혜를 베풀되, 받는 사람에게 유용한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은혜를 베푼 사람은 즉시 잊어야 하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은혜도 받을 자격이 없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행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이런 자들은 결국 조직과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
《인생론》에서는 정치적인 얘기를 피하려고 했던 세네카가 남긴 지도자에 대한 몇 마디 조언도 눈길을 끈다. “최악의 결정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민중을 따르기만 하면 민중과 함께 망하고,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에게 망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민중에게 인기가 없지만 득이 될 정책을 내놓고 부단히 설득한다. 최악의 지도자는 인기 있는 정책만 내놓고, 인기 없지만 정작 필요한 정책은 주저한다. 이런 지도자들은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 민중과 전문가들도 잘못됐다고 하는 정책을 고집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로마 스토아학파 거두였던 세네카는 그리스 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곧잘 비교된다. 서양인들에게 세네카는 아리스토텔레스(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처럼 ‘황제(로마 네로)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네카는 사상가에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했고, 수많은 작품도 남겼다. 《트로이의 여인들》 등 그리스 작품을 각색한 9편의 동명(同名) 비극이 대표 작품이자 현존하는 로마시대 유일의 비극들이다. 이들 작품은 셰익스피어 등 후대 문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삶의 비극에서 나온 치유의 언어
세네카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비극적이었다. 네로를 보필하며 로마 국정을 좌지우지한 불과 몇 년을 제외하곤 투옥과 귀양살이를 반복했다. 폭군으로 돌변한 네로를 암살하려던 음모에 연루됐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을 명령받았다. 바로크 미술의 대가 루벤스의 ‘세네카의 죽음’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신고전주의 미술의 거장 다비드)처럼 독약을 마시고 초연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세네카가 굴곡진 삶에서 분출되는 분노, 좌절, 허무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 남긴 글이 《인생론》이다. 국내외에서 소개되는 《인생론》은 그의 수필 《인생의 짧음에 관해(On the Shortness of Life)》에 《마음의 평정에 관해(On Tranquillity of Mind)》 《화(火)를 다스리는 법(On Anger)》 등이 추가된 것이다.
《인생론》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이성의 명령에 끝없이 귀를 기울이라”는 스토아학파의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준다. “자신을 성찰해 마음을 다스리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자 인생의 성공”이라는 너무나 평범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일상의 번뇌를 못 벗어나는 범인(凡人)들은 불우했던 삶에서 자신을 치유하려고 몸부림친 세네카에게서 동질감과 위안을 얻는다.
수많은 명언을 만들어낸 그의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번뜩이는 표현은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창조적 오역(誤譯)’이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세상에 알린 사람도 세네카다. 우리가 아는 상당수 명언들도 출처를 따져보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인생론을 읽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세네카가 《인생론》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분노다. “화는 모든 병과 불화의 근원이다. 화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하는 촉매다. 화는 인간을 칼의 끝으로 뛰어들게도 한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벌컥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칭찬은 협동을 유도하지만 화는 불화를 즐긴다.”
세네카는 “목표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인생은 단편소설과 같다. 하지만 인간이 수명을 짧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짧게 만든다. 주체할 수 없는 부(富)도 주인을 잘못 만나면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미미한 재산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금세 불어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다. 욕망에 휘둘리는 인생은 낭비일 뿐이다.”
세네카는 “끊임없는 배움이야말로 스토아학파가 지향하는 최고 경지인 이성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배움에는 평생이 걸린다. 어디 가나 좋은 스승이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려면 평생이 걸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데도 평생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위인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세상을 하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최악의 결정은 결정하지 않는 것"
세네카는 ‘은혜’의 유용성에 관한 말도 많이 남겼다. “인간관계를 정립하고,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려내는 유용한 근거”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은혜를 베푸는 방법과 갚는 방법도 자세히 설명했다. “은혜를 베풀되, 받는 사람에게 유용한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은혜를 베푼 사람은 즉시 잊어야 하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은혜도 받을 자격이 없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악행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이런 자들은 결국 조직과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
《인생론》에서는 정치적인 얘기를 피하려고 했던 세네카가 남긴 지도자에 대한 몇 마디 조언도 눈길을 끈다. “최악의 결정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민중을 따르기만 하면 민중과 함께 망하고,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에게 망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민중에게 인기가 없지만 득이 될 정책을 내놓고 부단히 설득한다. 최악의 지도자는 인기 있는 정책만 내놓고, 인기 없지만 정작 필요한 정책은 주저한다. 이런 지도자들은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 민중과 전문가들도 잘못됐다고 하는 정책을 고집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