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협약 비준 안하면 EU가 보복?…"FTA 규정상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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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韓·EU FTA 협정문엔
정부의 '비준 노력'만 명시
韓·EU FTA 협정문엔
정부의 '비준 노력'만 명시
유럽연합(EU)의 통상담당 집행위원(통상장관)이 지난 9일 방한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재차 촉구했다.
이 소식을 들은 노동계는 마치 ‘우군’을 얻은 듯 정부 측에 “비준을 서둘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따라 EU가 경제보복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EU FTA 규정을 보면 ‘경제보복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U 경제보복설 어떻게 나왔나
ILO 핵심협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노동계의 숙원 사업이다. 우리나라가 미비준한 4개 협약은 ‘결사의 자유’(87, 98호)와 ‘강제노동 금지’(29, 105호)에 관한 내용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는 지난해 11월 1단계로 해직·실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 공무원 단결권 확대 등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이후 경영계 요구사항인 쟁의행위 및 단체교섭권 등에 관한 논의(2단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2단계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노동계는 “ILO 협약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경영계는 “ILO 협약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노사관계 관행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EU가 FTA 규정을 근거로 “한국이 협약 비준 노력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하면서 논란은 가열됐다. ‘경제보복’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노사관계위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다. 이 교수는 EU의 정부 간 협의 요청 이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같은 상황이 우려되며, EU가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상상력이 풍부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수차례 주장했다.
전문가들 “경제 제재 불가능”
이 교수의 주장과 달리 상당수 노동전문가는 “FTA 규정상 경제보복설은 가능하지 않고,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실제 한·EU FTA 협정문에서 ILO 핵심협약과 관련된 13장(무역과 지속가능 발전)을 살펴보면 ‘비준’ 자체가 아니라 ‘비준 노력’만을 명시하고 있다. 또 EU가 정부 간 협상 다음단계로 예고한 전문가패널 운영도 일반 무역분쟁과는 달리 ‘자문 또는 권고’ 수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도 협약 미비준에 따른 경제보복 가능성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EU와의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을 미비준하더라도 특혜관세 철폐 또는 금전적 배상 의무 같은 경제적 제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보복설’ 논란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한 문 대통령이 오는 6월 ILO 100주년 총회 참석을 계획하고 있고, 그 전에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사관계위는 명칭에서 보듯이 ILO 협약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노사관계 제도·관행의 개선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기구로 출발한 것”이라며 “만에 하나 EU가 경제보복을 거론한다면 비준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익을 위해 EU에 강경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이 소식을 들은 노동계는 마치 ‘우군’을 얻은 듯 정부 측에 “비준을 서둘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따라 EU가 경제보복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EU FTA 규정을 보면 ‘경제보복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U 경제보복설 어떻게 나왔나
ILO 핵심협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노동계의 숙원 사업이다. 우리나라가 미비준한 4개 협약은 ‘결사의 자유’(87, 98호)와 ‘강제노동 금지’(29, 105호)에 관한 내용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는 지난해 11월 1단계로 해직·실직자의 노조 가입 허용, 공무원 단결권 확대 등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공익위원안을 발표한 이후 경영계 요구사항인 쟁의행위 및 단체교섭권 등에 관한 논의(2단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2단계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노동계는 “ILO 협약은 거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경영계는 “ILO 협약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노사관계 관행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EU가 FTA 규정을 근거로 “한국이 협약 비준 노력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하면서 논란은 가열됐다. ‘경제보복’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노사관계위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다. 이 교수는 EU의 정부 간 협의 요청 이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같은 상황이 우려되며, EU가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상상력이 풍부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수차례 주장했다.
전문가들 “경제 제재 불가능”
이 교수의 주장과 달리 상당수 노동전문가는 “FTA 규정상 경제보복설은 가능하지 않고,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실제 한·EU FTA 협정문에서 ILO 핵심협약과 관련된 13장(무역과 지속가능 발전)을 살펴보면 ‘비준’ 자체가 아니라 ‘비준 노력’만을 명시하고 있다. 또 EU가 정부 간 협상 다음단계로 예고한 전문가패널 운영도 일반 무역분쟁과는 달리 ‘자문 또는 권고’ 수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도 협약 미비준에 따른 경제보복 가능성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EU와의 정부 간 협상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을 미비준하더라도 특혜관세 철폐 또는 금전적 배상 의무 같은 경제적 제재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보복설’ 논란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한 문 대통령이 오는 6월 ILO 100주년 총회 참석을 계획하고 있고, 그 전에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사관계위는 명칭에서 보듯이 ILO 협약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노사관계 제도·관행의 개선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기구로 출발한 것”이라며 “만에 하나 EU가 경제보복을 거론한다면 비준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익을 위해 EU에 강경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