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외교·안보 수뇌부 만난 文대통령  >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영빈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 두 번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첫 번째) 등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美 외교·안보 수뇌부 만난 文대통령 >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영빈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 두 번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첫 번째) 등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조기에 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2시간가량의 정상회담을 통해서다. 양국은 북한을 완전한 비핵지대로 만들기 위해 ‘중간 길목’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현재진행형인 북한의 핵활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 포인트’로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7번째 한·미 정상 만남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만난 두 정상 간 대화는 단독-확대-오찬회담의 형식으로 2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낮 12시께 시작된 단독회담은 영부인을 동반한 친교의 자리였다. 본격적인 대화는 각각 배석자 3명을 동반한 확대회담에서 이뤄졌다. 우리 측에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윤제 주미 대사가 참석했다. 미국 측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가 배석했다.

양측은 세 가지 원칙에 의견 일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북핵 문제를 대화(외교)를 통해 해결하고, 이를 위해 미·북 협상을 조속히 열며, 대북 정책에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건 양국이 큰 틀에서 조율을 마쳤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원칙적인 합의 외에 청와대 쪽에서 북핵 해법과 관련해 백악관에 몇 가지 제안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볼턴 보좌관 등과 만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오전에 볼턴 보좌관을 포함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장관 등을 접견했다.

주목받는 문(文)의 ‘촉진자’ 역할

‘북한의 핵활동 등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날 청와대 제안의 골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핵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을 수차례 경고해왔다.

전문가들은 ‘문(文)의 설득’이 어느 정도 통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예산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제재 완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대북제재 해제에 관한 질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약간의 여지(a little space)를 남겨두고 싶다”며 “때로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에 올바른 일이라고 여겨지는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때”라고 답했다. 미국 언론도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폼페이오 장관이 제재 완화에 재량권을 행사할 것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한·미 정상이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양측은 핵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신고 및 동결을 조기 수확의 목표로 삼는 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적지와 일정을 담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고, WMD 동결을 중간 기착지로 정해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협상)’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2·28 하노이 회담’ 전에 세웠던 목표기도 하다.

미·북 협상에 밝은 한 관계자는 “하노이 회담을 준비하면서 한·미 모두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했다”며 “다만 한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9월 평양선언에서 공표한 영변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을 생각했고, 미국은 훨씬 더 진전된 비핵화 조치인 WMD 동결을 목표로 정하면서 이견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조기 수확 목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3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등 북핵 협상을 다시 본궤도에 올려 놓기 위한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대북특사 파견, 3차 남북한 정상회담 등 일련의 대북접촉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간 합의 사항을 김정은에게 전달하면서 체제 보장, 남북경협 재개 등의 당근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국의 대북특사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정의를 포함해 미국의 입장을 북한에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북경협 재개 등) 일부 제재 면제는 몰라도 제재 해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북한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동휘/워싱턴=박재원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