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
민갑룡 경찰청장
자유한국당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경찰의 반발이 확산되자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권성동 의원과 민갑룡 경찰청장이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권 의원은 민 청장과 협의해 경찰 측 요구를 수용한 법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민 청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펄쩍 뛰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한국당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지난달 26일 공개된 뒤 경찰 내부 게시판엔 이를 반대하는 글과 댓글이 수만 건 올라왔다. “검찰의 노예가 되는 법안”이라거나 “경찰에 대한 수사 개입을 강화한 ‘독소조항’이 늘었다”는 비판 글이 대부분이었다. 경찰의 반발이 커지자 표를 의식한 법안 공동 발의 의원들도 발을 빼는 양상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당은 내년 총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당론으로 채택했던 이 법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법안에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수사요구권’으로 바꾸고, 수사요구에 경찰이 불응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정보경찰을 분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검찰측은 수사지휘권이 빠진 것에 대해 권 의원측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권 의원은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검찰 측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민 청장 등 경찰 측과는 수시로 만나 협의했다”며 경찰 내부 반발에 의아해 하고 있다. 권 의원과 경찰 출신인 이철규 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19일 민 청장과 경찰청 간부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으로 불러 수사권 조정 법안을 협의했다. 권 의원에 따르면 당시 민 청장은 “검찰이 수사를 지휘한다”는 내용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대신 수사 요구 불응 시 경찰에 대한 제재 방안과 정보경찰 분리 등은 수용할 의향을 내비쳤다. 권 의원은 “제재 방안에 대해선 당시 논의 이후 전화 통화를 통해 민 청장과 합의했다”며 “정보경찰 분리도 민 청장이 경찰개혁위원회 권고사항을 언급하며 동의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 측은 경찰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민 청장이 동의했다는 증거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하려 했으나 경찰측 만류로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 청장 측은 “사실이 아니다”며 “제재에 대해선 당시 논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고, 정보 경찰의 필요성에 대해 오히려 권 의원이 공감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경찰은 법안 발의에 참여한 14명 의원들에게 ‘문제가 있는 법안’이라며 조직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발의 철회를 압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모 의원이 경찰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의원님께서 공동발의자로 참여하신 이 법안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며 “권성동의원 안은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내용과는 달리 검찰 개혁과는 거리가 있으며 경찰을 검찰에 더 옭매는 것 같다는 여론입니다”고 했다.
발의 의원이 10명 미만으로 떨어지면 정족수 미달로 법안은 폐기된다. 최근 의원 1명이 발의 철회 의사를 밝혔다. 국회 사개특위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12만 경찰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역구내 여론 형성에도 정보 경찰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