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죄추정' 제외, 기업인이 마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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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소만으로 '주주가치 훼손했다' 재단
무죄추정이란 기본권 침해하는 범죄 행위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때 신중히 접근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무죄추정이란 기본권 침해하는 범죄 행위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때 신중히 접근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시론] '무죄추정' 제외, 기업인이 마녀인가](https://img.hankyung.com/photo/201904/07.14242941.1.jpg)
많은 사람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국민연금에 연금 가입을 신청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도입 이전부터도 국민연금은 국가재정법 제64조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의무를 부담한다. 의결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법률 위반이고 직무유기가 된다.
기업 이사 선임 또는 연임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주가치 훼손 이력’ 때문이다. 특히 배임, 횡령, 공정거래법 위반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 범죄는 한국에서는 기업인에게 주로 적용되는, ‘걸면 걸리는’ 범죄여서 무죄율이 높다. 마지막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패소한 사례가 많다. 무죄 또는 무혐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소는 됐으나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경우는 더욱 문제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헌법 제27조 제4항. 동일한 내용이 형사소송법 제275조의 2에도 규정돼 있다). 기소 이전 상태인 단순한 형사피의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기소됐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하므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몇몇 이사 선임 안건에서 법원의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주주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해서 해당 이사후보의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다.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고 확정하고 검찰 기소 시점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동안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꾸준히 올랐는데도 말이다.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을 판단해야 할 사람은 국민연금 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주주권행사 분과위원들이다. 필자도 이 위원회 위원이다. 이런 결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다수 위원들은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주주권행사 분과위원회 위원들은 조사나 수사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면서 단지 검사가 기소했다는 사실만으로, 검사도 판사도 ‘확정’하지 못한 범죄로 인해 주주가치 훼손행위가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멋대로 재단(裁斷)한다. 이것은 오만(傲慢)을 넘어선 범죄가 아닌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기업인들은 현대판 마녀라도 된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