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죄추정' 제외, 기업인이 마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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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소만으로 '주주가치 훼손했다' 재단
무죄추정이란 기본권 침해하는 범죄 행위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때 신중히 접근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무죄추정이란 기본권 침해하는 범죄 행위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때 신중히 접근해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2019년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내내 화제였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총 294곳에 달한다.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90곳에 이르다 보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연금사회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국민이 많다. 국민연금은 개인이 아니므로 일종의 기관투자가다. 기관투자가는 위탁자에게 신인의무(信認義務)를 다해야 한다. 신인의무의 내용에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국민연금에 연금 가입을 신청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도입 이전부터도 국민연금은 국가재정법 제64조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의무를 부담한다. 의결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법률 위반이고 직무유기가 된다.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것도 ‘국민연금법’에서 보건복지부 장·차관이나 공무원이 일정 부분 관여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 법률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거나 정교한 법률을 만들지 못한 국회의 책임이 장·차관의 책임보다 더 무겁다.
기업 이사 선임 또는 연임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주가치 훼손 이력’ 때문이다. 특히 배임, 횡령, 공정거래법 위반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 범죄는 한국에서는 기업인에게 주로 적용되는, ‘걸면 걸리는’ 범죄여서 무죄율이 높다. 마지막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패소한 사례가 많다. 무죄 또는 무혐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소는 됐으나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경우는 더욱 문제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헌법 제27조 제4항. 동일한 내용이 형사소송법 제275조의 2에도 규정돼 있다). 기소 이전 상태인 단순한 형사피의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기소됐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하므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제정된 ‘인권선언’에서 확립됐다. 마녀라는 혐의를 씌워 죄 없는 사람을 유죄 증거 없이 죽이는 중세의 악습을 끝장내기 위한 것이었다.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을 계기로 모든 문명국이 헌법전에 아로새긴 원칙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몇몇 이사 선임 안건에서 법원의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주주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해서 해당 이사후보의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다.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고 확정하고 검찰 기소 시점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동안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꾸준히 올랐는데도 말이다.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을 판단해야 할 사람은 국민연금 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주주권행사 분과위원들이다. 필자도 이 위원회 위원이다. 이런 결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다수 위원들은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국가 최상위 법률인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무죄추정’이 명시돼 있는데도 피의자에게 고통을 가하고, 그 행동에 제한을 가하는 자는 누구든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범법행위의 가해자가 된다. 검사는 기소 단계에서 ‘객관적인 범죄 사실’의 존재를 ‘확신’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는 검사도 판사도 ‘객관적인 사실’의 존재를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주주권행사 분과위원회 위원들은 조사나 수사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면서 단지 검사가 기소했다는 사실만으로, 검사도 판사도 ‘확정’하지 못한 범죄로 인해 주주가치 훼손행위가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멋대로 재단(裁斷)한다. 이것은 오만(傲慢)을 넘어선 범죄가 아닌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기업인들은 현대판 마녀라도 된다는 것인가.
많은 사람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은 국민연금에 연금 가입을 신청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도입 이전부터도 국민연금은 국가재정법 제64조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의무를 부담한다. 의결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법률 위반이고 직무유기가 된다.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이것도 ‘국민연금법’에서 보건복지부 장·차관이나 공무원이 일정 부분 관여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다. 그런 법률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거나 정교한 법률을 만들지 못한 국회의 책임이 장·차관의 책임보다 더 무겁다.
기업 이사 선임 또는 연임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주가치 훼손 이력’ 때문이다. 특히 배임, 횡령, 공정거래법 위반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앞의 두 가지 범죄는 한국에서는 기업인에게 주로 적용되는, ‘걸면 걸리는’ 범죄여서 무죄율이 높다. 마지막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패소한 사례가 많다. 무죄 또는 무혐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소는 됐으나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경우는 더욱 문제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헌법 제27조 제4항. 동일한 내용이 형사소송법 제275조의 2에도 규정돼 있다). 기소 이전 상태인 단순한 형사피의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기소됐더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하므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제정된 ‘인권선언’에서 확립됐다. 마녀라는 혐의를 씌워 죄 없는 사람을 유죄 증거 없이 죽이는 중세의 악습을 끝장내기 위한 것이었다.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을 계기로 모든 문명국이 헌법전에 아로새긴 원칙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몇몇 이사 선임 안건에서 법원의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주주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해서 해당 이사후보의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다.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고 확정하고 검찰 기소 시점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동안 주가는 거의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꾸준히 올랐는데도 말이다.
주주가치 훼손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을 판단해야 할 사람은 국민연금 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주주권행사 분과위원들이다. 필자도 이 위원회 위원이다. 이런 결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다수 위원들은 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국가 최상위 법률인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무죄추정’이 명시돼 있는데도 피의자에게 고통을 가하고, 그 행동에 제한을 가하는 자는 누구든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범법행위의 가해자가 된다. 검사는 기소 단계에서 ‘객관적인 범죄 사실’의 존재를 ‘확신’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단계에서는 검사도 판사도 ‘객관적인 사실’의 존재를 ‘확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주주권행사 분과위원회 위원들은 조사나 수사에 전혀 관여한 바 없으면서 단지 검사가 기소했다는 사실만으로, 검사도 판사도 ‘확정’하지 못한 범죄로 인해 주주가치 훼손행위가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멋대로 재단(裁斷)한다. 이것은 오만(傲慢)을 넘어선 범죄가 아닌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기업인들은 현대판 마녀라도 된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