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가 상충하거나 미비해 바이오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규제 개선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정부가 제도 정비에도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기관 연구자 임상은 관련 법 내용이 서로 달라 혼선을 빚고 있는 대표적인 규제다. 생명윤리법에서는 여러 의료기관에서 임상을 할 때 의료기관 한 곳에서만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심의를 통과하면 다른 곳도 통과한 것으로 인정해준다. 하지만 약사법의 내용은 다르다. 다기관 임상을 하려면 임상이 시행되는 모든 의료기관의 IRB로부터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한 의료기관에서만 심의받으면 되는 ‘IRB 심사 상호 인증제’가 첨단재생의료법에 포함됐지만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세계 최초로 사랑니 등 발치한 치아를 가공해 뼈이식재로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한 한국치아은행은 제도 미비로 사업을 못하고 있다. 폐기물관리법상 폐치아는 의료폐기물에 해당해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환경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우리 제품을 의료기기로 심사하려고 하면 법 개정을 고려하겠다고 하고 식약처는 반대로 환경부가 먼저 법을 고쳐야 한다고 발을 뺀다”며 “정부 부처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바쁘다”고 토로했다.

지방흡입수술 뒤 남은 인체 폐지방도 의료폐기물에 포함돼 상업적으로 쓸 수 없다. 안트로젠, 메디칸 등 일부 업체는 연구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매년 버려지는 인체 지방은 200t으로 이를 재활용하면 20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추산된다.

원격의료 등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불모지에 가깝다. 글로벌 상위 100개 헬스케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가운데 63개 기업은 원격의료 금지,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항목 제한 등 각종 규제로 한국에서 온전한 사업을 할 수 없다. 인핏앤컴퍼니, 네오펙트 등 한국을 떠나는 헬스케어 업체가 늘어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9년 세계 최초로 개발된 당뇨발 측정 생체 영상장비의 경우 바이오벤처 뷰웍스가 2012년 개발을 완료했지만 식약처는 기존에 없는 기기라는 이유로 10여 편이 넘는 임상논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이 기기는 허가를 받지 못하고 2017년 동물용으로만 출시됐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