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개혁 또 '후퇴'…정부, 직무급제 도입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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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 '도입 권고'만 하기로
"내년 총선 의식 노조 눈치" 논란
"내년 총선 의식 노조 눈치" 논란
정부가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막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추진하려던 직무급제가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12일 관계부처와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정부는 직무급제를 강제하지 않고 권고만 하기로 했다. 또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에도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관에 불이익(페널티)을 주지 않기로 했다.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데 공공노조가 반대하고 있어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관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노조 눈치를 보느라 임금체계 개편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직무급제란 호봉제와 달리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노사자치주의 원칙이 훼손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정부는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게 했고, 공공기관 평가 시 미도입 기관은 감점을 줘 공공노조의 반발을 샀다.
현 정부는 출범 1개월 만인 2017년 6월 성과연봉제를 호봉제로 되돌릴 수 있도록 했고, 대부분 공공기관이 호봉제로 돌아갔다.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이 후퇴했다는 비난이 일자 정부는 “성과급제 대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올 상반기에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기로 했지만 최근 민주당이 “내년 총선 이후로 발표를 늦춰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철밥통' 깬다며 추진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내년 총선 앞두고 '무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 12월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2019년 상반기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은 현재로선 빈말이 될 공산이 크다. 공공기관을 총괄하는 기재부와 임금체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직무급제 매뉴얼 제작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핑퐁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실익’이 없어졌다는 판단에서다. 당정은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한 만큼 공공기관이 노조 반발을 무릅쓰고 직무급제를 도입할 이유가 사라졌다.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하는 등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노동개혁이 잇따라 폐기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 노동정책 가운데 그나마 친(親)시장적이라 평가받은 직무급제 도입마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우리 업무 아니다” 손 놓은 부처들
직무급제는 독일 영국 등에서 보편화된 제도다. 국내 대부분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호봉제는 공채로 같은 연도에 입사했다면 하는 일에 상관없이 임금이 같다. 직무급제는 하는 업무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이 다르다.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는 식이다. 비슷한 업무를 하면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받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그해 11월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람들에게 우선 적용하겠다고도 했다.
정부는 2018년 상반기 공공기관 등에 적용할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공공부문 노조가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보다 더 나쁜 개악”이라며 반발하자 일정이 계속 밀렸다. 기재부는 작년 12월에야 직무급제 도입을 주제로 한 ‘공공기관 보수체계 개편과 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정부가 토론회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공부문 노조는 청와대와 국회를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직무급제 도입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며 정부에 선거 이후로 발표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결국 당정은 직무급제 도입을 공공기관에 강제하지 않고 권고만 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 부처들은 직무급제 매뉴얼 작성 작업을 진척시키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직무급제 매뉴얼 작성은 고용부 담당”이라고 했고, 고용부 관계자는 “우리 업무가 아니다”고 했다.
잇따라 좌초되는 노동개혁
친노동을 표방한 현 정부는 출범 직후 박근혜 정부에서 마련한 노동개혁안을 잇따라 폐기했다. 고용부가 2017년 9월 ‘양대지침’ 폐기를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양대지침이란 저성과자 해고기준을 규정하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말한다. 저성과자에 대해 교육훈련·직무 재배치 등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개선이 안 될 경우 해고(일반해고)가 가능하도록 하고,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없더라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강성노조로 인한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핵심 노동개혁 중 하나였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친노동정책은 경제 현장 곳곳에서 부작용을 불러왔다. 정부는 뒤늦게 ‘속도조절’에 나섰지만 노동계 반발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주 52시간 근로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자 추진 중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이 합의한 사안이다. 하지만 장외에서 투쟁 중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반대로 입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체계 개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개편안을 내놨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직무급제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체계를 완전히 달리하는 식이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하는 성과연봉제 등과 구분된다.
이태훈/백승현/김우섭 기자 beje@hankyung.com
12일 관계부처와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정부는 직무급제를 강제하지 않고 권고만 하기로 했다. 또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에도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관에 불이익(페널티)을 주지 않기로 했다.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데 공공노조가 반대하고 있어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관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노조 눈치를 보느라 임금체계 개편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직무급제란 호봉제와 달리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노사자치주의 원칙이 훼손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정부는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게 했고, 공공기관 평가 시 미도입 기관은 감점을 줘 공공노조의 반발을 샀다.
현 정부는 출범 1개월 만인 2017년 6월 성과연봉제를 호봉제로 되돌릴 수 있도록 했고, 대부분 공공기관이 호봉제로 돌아갔다.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이 후퇴했다는 비난이 일자 정부는 “성과급제 대신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올 상반기에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기로 했지만 최근 민주당이 “내년 총선 이후로 발표를 늦춰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철밥통' 깬다며 추진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내년 총선 앞두고 '무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작년 12월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2019년 상반기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은 현재로선 빈말이 될 공산이 크다. 공공기관을 총괄하는 기재부와 임금체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직무급제 매뉴얼 제작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핑퐁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실익’이 없어졌다는 판단에서다. 당정은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한 만큼 공공기관이 노조 반발을 무릅쓰고 직무급제를 도입할 이유가 사라졌다.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하는 등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노동개혁이 잇따라 폐기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 노동정책 가운데 그나마 친(親)시장적이라 평가받은 직무급제 도입마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우리 업무 아니다” 손 놓은 부처들
직무급제는 독일 영국 등에서 보편화된 제도다. 국내 대부분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호봉제는 공채로 같은 연도에 입사했다면 하는 일에 상관없이 임금이 같다. 직무급제는 하는 업무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이 다르다.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는 식이다. 비슷한 업무를 하면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받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그해 11월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람들에게 우선 적용하겠다고도 했다.
정부는 2018년 상반기 공공기관 등에 적용할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공공부문 노조가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보다 더 나쁜 개악”이라며 반발하자 일정이 계속 밀렸다. 기재부는 작년 12월에야 직무급제 도입을 주제로 한 ‘공공기관 보수체계 개편과 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정부가 토론회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공부문 노조는 청와대와 국회를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직무급제 도입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며 정부에 선거 이후로 발표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결국 당정은 직무급제 도입을 공공기관에 강제하지 않고 권고만 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 부처들은 직무급제 매뉴얼 작성 작업을 진척시키지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직무급제 매뉴얼 작성은 고용부 담당”이라고 했고, 고용부 관계자는 “우리 업무가 아니다”고 했다.
잇따라 좌초되는 노동개혁
친노동을 표방한 현 정부는 출범 직후 박근혜 정부에서 마련한 노동개혁안을 잇따라 폐기했다. 고용부가 2017년 9월 ‘양대지침’ 폐기를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양대지침이란 저성과자 해고기준을 규정하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말한다. 저성과자에 대해 교육훈련·직무 재배치 등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개선이 안 될 경우 해고(일반해고)가 가능하도록 하고,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없더라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강성노조로 인한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핵심 노동개혁 중 하나였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친노동정책은 경제 현장 곳곳에서 부작용을 불러왔다. 정부는 뒤늦게 ‘속도조절’에 나섰지만 노동계 반발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주 52시간 근로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자 추진 중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이 합의한 사안이다. 하지만 장외에서 투쟁 중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반대로 입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체계 개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개편안을 내놨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직무급제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체계를 완전히 달리하는 식이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하는 성과연봉제 등과 구분된다.
이태훈/백승현/김우섭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