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의 선전狂시대] 중국의 기자와 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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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히 '취재 비용' 달라는 민영매체
정부에 동향보도하는 관영매체
중국 언론 환경 정의하는 양대 조건
정부에 동향보도하는 관영매체
중국 언론 환경 정의하는 양대 조건
“별도의 비용이 필요한가요?(有什么费用吗)”
선전에서 취재할 스타트업과 접촉하며 자주 듣는 질문이다. 취재하고 싶은 이유와 간략한 질문을 이쪽에서 전달한 뒤에는 거의 어김없이 이같이 묻는다. 말 그대로 기사가 매체에 보도되기 위해 기업쪽이 돈을 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중국 스타트업 관계자는 “취재를 하고 싶다고 연락오는 많은 매체들이 ‘보도 비용’을 요구해 묻는다”며 “바쁜 회사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까지 끝내고 ‘기사가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 난처한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 정도가 높을수록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진다고 이야기된다. 다양한 의견이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며 언론 보도 역시 수시로 검증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보도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로 보도 대상부터 매체 허가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있음에도 언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낮다.
그나마 국가 통제가 적다는 민영매체들은 위에서 살펴봤듯 공공연한 지대추구 행위로 공정성에 의심을 받는다. 기자가 중국 대학생들에게 선호되는 직업이라는 말을 한 중국 대학생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기자는 월급 외에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많다. 좋은 기사를 써도 돈을 받고 나쁜 기사를 써도 돈을 받는다. 좋은 기사를 쓰면 그에 대한 사례를 받고, 나쁜 기사를 쓰면 내리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내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국가나 지방정부에 소속된 매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상대적으로 ‘기자냄새’가 난다는 것도 이쪽 매체 기자들이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가 가능한 엘리트들도 많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국가의 기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중국에서 관영 매체 기자에게 보도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는 주요 사항에 대한 보고다. 최고 권력을 가진 공산당과 한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이 대상이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민일보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있으며 관영통신사인 신화사와 경제매체로 한국경제신문의 제휴사기이도 한 경제일보는 국무원에 소속돼 있다.
이들 매체들은 단순히 정부 방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넘어, 시행 과정에 직접 개입한다. 중국의 산업사를 들여다봐도 이같은 행동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을 다시 다른 기업에 빌려주는 '삼각채무'로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던 1993년이 대표적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기업에 돈이 흘러들어가고, 지하경제가 팽창하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던 당시 총리 주룽지는 관영 언론들에게 실태를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인민일보와 신화사,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 등은 감독권까지 부여 받고 금융권과 기업에 대한 감찰을 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에 중국 정부가 제동을 걸던 2004년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테번이라는 민영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철강을 일단 생산하고 본다고 결정하고 장쑤성 창저우에 공장을 짓고 있었다. 마침 전국 각지에 건설되고 있던 골프장 등의 토지 점유 문제를 조사하러 나왔던 신화사 기자들은 난징에서 관련 인터뷰를 하던 중에 우연히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들은 "공장을 지으면 당연히 땅이 필요할테고 대규모 불법 토지 점유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창저우로 향했고, 한 강변에서 제철소 공사현장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이었다면 고발성 기사를 지면이나 영상으로 담아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자들은 기사를 쓰지 않았다. 대신 "200만 제곱미터의 토지가 지방정부에서 정식으로 징발하지 않은 가운데 사용되고 있고 환경 심사 비준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부 참고자료를 작성했다.
이는 곧 공산당 및 국무원의 고위층에 전달됐다. 이후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국토자원부 환경보호총국이 현장 조사에 나섰으며 결국 해당 업체는 문을 닫게 됐다. 중국 관영 언론매체에서 공산당 및 중국 정부에 대한 정보보고가 보도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다보니 중국 관영매체의 기자들은 사실상 공무원처럼 일하기도 한다. 1년은 신화사에서 일하다 1년은 선전부에서 일하는 식이다. 지방정부에 직접 소속된 매체들도 이같은 '순환근무'가 흔히 나타난다. 관영매체 기자들은 거의 모두 공산당원이기도 하다. 일자리의 안정성만 놓고보면 중국 관영매체 기자들은 세계 어떤 곳의 기자들보다 안정된 지위를 누리는 셈이다.
물론 중국 매체 및 보도 전체를 매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제가 비교적 적은 경제 영역에서는 수준 높은 보도도 드물지 않게 나온다. 하지만 매체 이름을 이용해 불합리한 방식으로 치부를 하는 민간 매체의 ‘기레기’와 정부에 철저히 종속된 관영매체의 ‘기자’는 중국 언론환경을 정의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선전에서 취재할 스타트업과 접촉하며 자주 듣는 질문이다. 취재하고 싶은 이유와 간략한 질문을 이쪽에서 전달한 뒤에는 거의 어김없이 이같이 묻는다. 말 그대로 기사가 매체에 보도되기 위해 기업쪽이 돈을 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중국 스타트업 관계자는 “취재를 하고 싶다고 연락오는 많은 매체들이 ‘보도 비용’을 요구해 묻는다”며 “바쁜 회사 관계자들에 대한 인터뷰까지 끝내고 ‘기사가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해 난처한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 정도가 높을수록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진다고 이야기된다. 다양한 의견이 공론의 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며 언론 보도 역시 수시로 검증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보도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로 보도 대상부터 매체 허가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있음에도 언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낮다.
그나마 국가 통제가 적다는 민영매체들은 위에서 살펴봤듯 공공연한 지대추구 행위로 공정성에 의심을 받는다. 기자가 중국 대학생들에게 선호되는 직업이라는 말을 한 중국 대학생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기자는 월급 외에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많다. 좋은 기사를 써도 돈을 받고 나쁜 기사를 써도 돈을 받는다. 좋은 기사를 쓰면 그에 대한 사례를 받고, 나쁜 기사를 쓰면 내리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내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국가나 지방정부에 소속된 매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상대적으로 ‘기자냄새’가 난다는 것도 이쪽 매체 기자들이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가 가능한 엘리트들도 많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국가의 기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중국에서 관영 매체 기자에게 보도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는 주요 사항에 대한 보고다. 최고 권력을 가진 공산당과 한국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무원이 대상이다.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민일보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있으며 관영통신사인 신화사와 경제매체로 한국경제신문의 제휴사기이도 한 경제일보는 국무원에 소속돼 있다.
이들 매체들은 단순히 정부 방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넘어, 시행 과정에 직접 개입한다. 중국의 산업사를 들여다봐도 이같은 행동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을 다시 다른 기업에 빌려주는 '삼각채무'로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던 1993년이 대표적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기업에 돈이 흘러들어가고, 지하경제가 팽창하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던 당시 총리 주룽지는 관영 언론들에게 실태를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인민일보와 신화사,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 등은 감독권까지 부여 받고 금융권과 기업에 대한 감찰을 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에 중국 정부가 제동을 걸던 2004년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테번이라는 민영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 철강을 일단 생산하고 본다고 결정하고 장쑤성 창저우에 공장을 짓고 있었다. 마침 전국 각지에 건설되고 있던 골프장 등의 토지 점유 문제를 조사하러 나왔던 신화사 기자들은 난징에서 관련 인터뷰를 하던 중에 우연히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들은 "공장을 지으면 당연히 땅이 필요할테고 대규모 불법 토지 점유가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창저우로 향했고, 한 강변에서 제철소 공사현장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이었다면 고발성 기사를 지면이나 영상으로 담아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자들은 기사를 쓰지 않았다. 대신 "200만 제곱미터의 토지가 지방정부에서 정식으로 징발하지 않은 가운데 사용되고 있고 환경 심사 비준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부 참고자료를 작성했다.
이는 곧 공산당 및 국무원의 고위층에 전달됐다. 이후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국토자원부 환경보호총국이 현장 조사에 나섰으며 결국 해당 업체는 문을 닫게 됐다. 중국 관영 언론매체에서 공산당 및 중국 정부에 대한 정보보고가 보도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다보니 중국 관영매체의 기자들은 사실상 공무원처럼 일하기도 한다. 1년은 신화사에서 일하다 1년은 선전부에서 일하는 식이다. 지방정부에 직접 소속된 매체들도 이같은 '순환근무'가 흔히 나타난다. 관영매체 기자들은 거의 모두 공산당원이기도 하다. 일자리의 안정성만 놓고보면 중국 관영매체 기자들은 세계 어떤 곳의 기자들보다 안정된 지위를 누리는 셈이다.
물론 중국 매체 및 보도 전체를 매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제가 비교적 적은 경제 영역에서는 수준 높은 보도도 드물지 않게 나온다. 하지만 매체 이름을 이용해 불합리한 방식으로 치부를 하는 민간 매체의 ‘기레기’와 정부에 철저히 종속된 관영매체의 ‘기자’는 중국 언론환경을 정의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