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南,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말라"…'딜레마'에 빠진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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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 3차 정상회담 '동상이몽'
北 '포스트 하노이' 전략 윤곽
'벼랑끝 전술'로 회귀
北 '포스트 하노이' 전략 윤곽
'벼랑끝 전술'로 회귀
북한의 ‘포스트 하노이’ 전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시정연설에서 “미국과의 대치는 장기전”이라고 했다. ‘벼랑 끝 전술’로의 회귀다. ‘2·28 하노이 회담’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제재완화+α’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주한미군 철수, 핵우산 철거 등을 완전한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정부를 향해선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날을 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촉진자 역할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싸움에 들어간 미·북
11일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등 베트남 하노이 회담 이후 중요 정치 일정이 마무리됐다. 포스트 하노이 첫 국면의 일단락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불확실 상태로 남아 있던 남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대외적으로 공식화됐다.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은 두 가지다. 미·북의 견해차가 좁혀질 수 없을 만큼 극명하다는 것과 이에 따라 ‘문(文)의 중재’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어려운 시험에 들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문(文)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선 빅딜을 얘기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을 통해 그간의 수성(守城) 전략에서 공세로 전환할 것을 분명히 했다. 하루짜리 행사를 이틀로 연장시키는 ‘꼼수’를 써가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워싱턴 회담을 지켜본 뒤 대미·대남 압박을 가했다. “우리 국가와 인민의 근본이익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와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골자다.
김정은 ‘주한미군 철수’ 금기 깨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빅딜’ 카드에 대응할 ‘새로운 계산법’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계 개선,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한 해설이다. 조선신보는 ‘다른 행동조치’와 관련해 ‘핵전쟁 위협을 없애나가는 군사분야 조치’를 지목했다. 북한이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에서 제안하려 했으나 미국이 당장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고 미뤄뒀던 조치를 이번에 요구하겠다는 얘기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심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 부분을 언급한 바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요구하는 군사적 조치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철거 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강조하는 ‘새로운 계산법’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해석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로드맵의 최종 목표에 북한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등을 넣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비핵화·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지위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하노이 회담 직전인 2월 초 “주한미군 문제는 테이블 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15일 입장 발표
미·북의 의견차가 분명해지면서 우리 정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11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한국이) 미국의 적대시정책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문 대통령을 겨냥해 날을 세웠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4·27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남북경협 등을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이행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열리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정은의 시정연설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특사와 관련한 언급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청와대와 외교당국의 잇따른 판단 실수가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보고 한·미 정상회담을 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우리 정부가 북·미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서두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한텐 대놓고 당사자로 나서라는 소리를 듣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 한·미 회담을 언급도 안 했다”며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근본적인 시험대에 오르며 힘든 한 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수싸움에 들어간 미·북
11일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등 베트남 하노이 회담 이후 중요 정치 일정이 마무리됐다. 포스트 하노이 첫 국면의 일단락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불확실 상태로 남아 있던 남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대외적으로 공식화됐다.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은 두 가지다. 미·북의 견해차가 좁혀질 수 없을 만큼 극명하다는 것과 이에 따라 ‘문(文)의 중재’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어려운 시험에 들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문(文)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선 빅딜을 얘기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을 통해 그간의 수성(守城) 전략에서 공세로 전환할 것을 분명히 했다. 하루짜리 행사를 이틀로 연장시키는 ‘꼼수’를 써가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워싱턴 회담을 지켜본 뒤 대미·대남 압박을 가했다. “우리 국가와 인민의 근본이익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와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골자다.
김정은 ‘주한미군 철수’ 금기 깨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내놓은 ‘빅딜’ 카드에 대응할 ‘새로운 계산법’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 정책 철회와 관계 개선,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한 해설이다. 조선신보는 ‘다른 행동조치’와 관련해 ‘핵전쟁 위협을 없애나가는 군사분야 조치’를 지목했다. 북한이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에서 제안하려 했으나 미국이 당장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보고 미뤄뒀던 조치를 이번에 요구하겠다는 얘기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심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 부분을 언급한 바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요구하는 군사적 조치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철거 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강조하는 ‘새로운 계산법’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해석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로드맵의 최종 목표에 북한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등을 넣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비핵화·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지위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고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하노이 회담 직전인 2월 초 “주한미군 문제는 테이블 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15일 입장 발표
미·북의 의견차가 분명해지면서 우리 정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11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한국이) 미국의 적대시정책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문 대통령을 겨냥해 날을 세웠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4·27 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남북경협 등을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이행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열리는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정은의 시정연설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특사와 관련한 언급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청와대와 외교당국의 잇따른 판단 실수가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보고 한·미 정상회담을 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우리 정부가 북·미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서두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한텐 대놓고 당사자로 나서라는 소리를 듣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 한·미 회담을 언급도 안 했다”며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근본적인 시험대에 오르며 힘든 한 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